"이번 건은 규모가 커서, 임원 (또는 사장님 또는 회장님) 결재까지 올라가야 하겠네"
통상적으로 기업에서 중요한 사안일수록, 더 높은 분께 보고를 드리고 의사결정을 받는 절차를 받는다. 여기서 우리는, 더 높은 분이 의사결정을 더 잘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의사결정을 잘 내리기 위해서는,
1.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2. 정보를 효과적으로 프로세싱할 수 있어야 한다.
3. 문제를 꿰뚫는 혜안 또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우선 1번을 들여다보자.
과거에는 높은 분들이 일반직원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임원회의 등의 과정을 통해 전사적인 관점에서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으므로 기획 담당자가 높은 분들께 보고하는 과정에서 다른 부서 또는 부문의 이해관계에 대해서 놓쳤던 부분을 발견하는게 가능했다.
그렇다면, 높은 분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므로, 기획자가 높은 분으로부터 의사결정을 받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하지만,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체계가 잘 갖추어진 지금의 시대에 왜 높은 분이 기획자보다 전사적인 관점의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기획에 필요한 정보라면, 기획 단계에서 모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기획을 담당하는 '팀'은 그 정보를 모두 활용하여 기획안을 만들어야 한다. 참고로 필요한 정보가 누락된 상태에서 보고하다가 새롭게 필요 정보를 알게 된다는 건 일어나서는 안되는 매우 멍청한 일이다)
따라서, 높은 분이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높은 분이 의사결정을 해야한다는 논리는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고 있는 조직이라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두번째, 정보의 프로세싱
많은 기업의 높은 분들은 관장하는 영역(span of control)이 넓기 때문에.. 특정 사안에 대해서, 뇌 속에 넣어 놓은 정보량이 적을 수 밖에 없고 보고받는 프로세스를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 들일 때도 뇌의 저장 및 프로세싱 용량의 한계를 고려해서, '핵심'적인 내용 위주로 선택적으로 저장하게 된다.
따라서, 기획자는 높은 분께 의사결정을 받기 위해 보고를 할 때 자신이 기획과정에서 발견하고 재구성한 '최대'한의 상세한 내용을 공유하고 토론하기를 바라기 보다는 높은 분이 소화할 수 있을 만한, 그리고 높은 분이 정보로 인정해줄 만한 '최소'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해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재구성을 적절하게 했더라도 '말'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보고가 정보의 내용보다는 '말' 또는 '언변' 또는 '평소의 관계' 또는 '이미지'에 의해서 그 성패가 결정되는 것도 현실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수많은 정보를 논리적으로 재 정렬하여 통찰을 얻어내는 것을 프로세싱이라고 정의할 때, 논리적으로 정렬을 잘하기 위해서 '과거의 경험'이 중요하다면 경험이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자가 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 축적된 경험의 유효성이 떨어지는 신사업이나 미래에 대한 투자 또는 예기치 못한 시장변화에 대한 대응이라고 한다면 경험이 많은 사람이 프로세싱을 더 잘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진다.
더군다나, 프로세싱해야하는 정보의 양이 무시무시하게 많은 경우에는 생물학적인 프로세싱 능력과 정보화 기기를 다루는 역량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높은 분이 정보를 더 잘 프로세싱할 것이라는 가정도 이렇게 무력화된다.
세번째, 문제를 꿰뚫는 통찰력
새롭게 부상하는 젊은 고객들을 대상으로하는 SNS 기반의 O2O 서비스를 개발한다고 해보자.
SNS를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면서, 신체의 일부처럼 활용하고, 매일 밤 배민으로 야식을 챙겨 먹고, 친구들의 생일에는 스타벅스 기프티콘으로 선물하는 젊은 똑똑이가 그 서비스에 대한 '통찰력'이 있기 쉬울까 아니면, 네모 양복을 입고 있는 경륜있는 임원이 더 '통찰력'이 있기 쉬울까?
사람의 개인차가 있겠으나 확률적으로만 본다면 나는 젊은 똑똑이의 손을 더 들어주는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높은 분께 보고를 드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통상적인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지금의 시대에는 더이상 그 유효성을 주장하기가 쉽지 않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리더, 윗사람, 상사, 임원, 경영자들이 과연 기업에 어떤 value로 기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점이 왔다고 보는게 맞다.
'리더'는 과연 어떤 역할로 어떤 기능으로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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