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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읽기

목민심서 읽기 4 -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

by pied_piper33 2024. 10. 15.
다산 정약용의 삶에서 중요한 시기마다 등장하는 '서용보'라는 인물이 있다.
1801년 다산이 신유박해의 광풍에 휘말려 감옥에 갇혔을 때, 죄없음이 밝혀져서 재판에 관계한 사람들로부터 석방하라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나 우의정 서용보가 반대하여 귀양을 떠나게 된다.
1803년 정순대비가 다산을 유배에서 풀어주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역시 서용보가 제지하여 유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배지에서의 1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고 고향으로 돌아온 1818년, 조정에서 다산을 등용하여 다산에게 오랫동안 갈고 닦아 온 재주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하였으나 이때도 서용보의 저지에 막힌다.
마키아벨리는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위험에 처한다'라고 경고한다.
즉, 정치라는 '잔인한 동물의 세계'는 힘에 의해서 움직이므로, 자기 자신을 지켜주고 동시에 타인을 해칠 수 있는 세력을 확보한 이들만이 자신의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물론, 세력이 없는 사람도 옳은 말을 할 수 있으나, 힘없는 이의 옳은 말은 세상을 바꾸지 못하며, 말한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따름이다.
 
다산은 암행어사 시절에 서용보의 비리를 고발할 수 있었으나 제거하지 못했으며, 서용보의 보복으로부터는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다.
신유박해와 같은 거대한 국가적 격변을 피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다산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백성을 이롭게 할 거대한 '사유'를 보유한 다산이 '서용보'를 넘어서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세상을 바꾸지 못한채, 백면서생의 처지 속에 머물었던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지적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