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지배체제를 이미 구축하고 대대로 세습해오고 있는 향리들이 겨우 몇년을 잠시 부임했다가 떠나는 목민관의 눈을 가리고, 백성을 해왔던 대로 착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목민관이 허수아비가 되지 않으면서 부여받은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보이는데 다산은 그 특단의 조치로서 '청렴'을 제시한다.
물론, 새로 부임하는 목민관이 '청렴'하다고 해서, 닳고 닳은 향리들이 마음에 감화를 받고 순종하게 된다는 나이브한 스토리는 아니다. 청렴하지 못한 행동들이 족쇄가 되어 목민관을 뒤흔들고 결국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쉽의 확보를 위한 출발점으로 청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산이 구체적으로 분류한 청렴의 항목을 들여다보면,
1. 돈으로부터의 청렴
목민관으로 임명을 받게 되면 중앙부처의 주요 관직자에게 상납을 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때 목민관은 상납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빚을 지게 되는데 채권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고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또한, 목민관으로 부임을 할 때 지역 유지로부터 문안 인사를 받게 되는데 이때에 목민관에게 제공되는 선물은 유지의 개인적인 정성이 아니라, 백성으로부터 착취한 것이므로, 선정을 베풀어보기도 전에 이미 백성은 새로 부임한 목민관을 원망할 수 밖에 없다.
2. 사람으로부터의 청렴
겸인과 전관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겸인은 양반 가문에서 제반 일을 도맡아 하는 청지기를 그리고 전관은 자신을 천거해준 고마운 사람을 의미한다.
다산은 이 '겸인'을 부임지로 데리고 갈 경우, 관부의 큰 '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음. '겸인'이 목민관의 복심을 자처하면서 향리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공로가 많은 겸인이 있으면 나중에 따로 후하게 보답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임지에는 동반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조언이다.
목민관으로서 자격이 없으면 천거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격이 있다면 자격에 따라 관직을 얻은 것이니, 개인적인 은혜로 생각하여 묶이면 안된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감사를 표현해도 안되고, 천거해준 사람이 천거 사실을 언급해도 "변변치 못한 사람을 천거했습니다. 제가 일을 그르쳐서 훗날 천거자에게 누를 끼칠까 두렵다"는 정도로 일축해야한다.
청렴에 대한 다산의 조언이 자칫 메마르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근본적인 '혁신'이 절실히 요청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백성이 배제된 상태에서) 누이좋고 매부좋은 공고한 기득권 카르텔을을 극복하면서 '혁신'을 추진해야 하는 난처한 여건이라면,
18년 유배생활로 이제는 잊혀진 사람이 되어버린 다산이 왜 이러한 조언을 했는지 그리고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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