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 직전, 히틀러와 독일 육군 총사령관 할더 사이에는 소련의 어디를 중점 타격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이견이 있었다.
히틀러는 남부 유전지역을 타격해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함으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할더는 소련의 중심인 모스크바를 초기에 무너뜨려서 전쟁 수행능력을 없애야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나폴레옹 전쟁과 보불 전쟁을 거치며 독일 육군은 '전쟁은 군사력의 대결이어야 한다'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즉, 군사력 대결을 넘어서서 적국의 국민 감정을 건들게 되면 전쟁의 양상은 '국민 전쟁'으로 확대되고, 국민 전쟁이 되는 순간 싸워야 할 대상이 적국 국민 전체로 확대됨에 따라 심각한 소모전을 통해 승자가 되더라도 너무나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 육군은 초기에 화력을 모아서 적국의 핵심 지역을 강하게 타격함으로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육군 총사령관 할더의 모스크바 공략 주장은 꽤 역사성을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제2차 세계 대전은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았으니, 장기전에 대비하여 유전지역을 공략해서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히틀러의 전략이 더 옳았을 수 있다.
하지만, 히틀러의 결정적인 패착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건 국가 최고 리더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즉, 국가 최고 리더로서 히틀러는 화력을 집중시킬 핵심 타격지역의 선정에 대해서는 전쟁을 수행하는 총사령관에게 맡겨야 했다.
오히려, 히틀러는 군사적인 지식과 역량도 없는 상태에서 총사령관의 결정을 대신 해줄게 아니라, 왜 전쟁을 하는지, 이 전쟁의 성격은 무엇인지, 이 전쟁으로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맥락을 형성하는 역할을 해야 했으며, 그 맥락 하에서 국가 여러 부문의 활동이 일관성을 갖도록 조율해서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만약, 히틀러가 장기전이라는 전쟁의 방향성을 명확히 정의했다면 육군 총사령관 할더와의 갈등이 생겨야 할 이유가 없다. 장기전을 예상했다면 할더 역시도 장기전에 필요한 자원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에 스스로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히틀러의 실수는 이제 계속된다.
루스벨트, 처칠, 무솔리니 등 자신의 카운터파트와 윗단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독일의 사령부에 앉아서 소련 대평원에 있는 야전군의 세부 작전을 직접 지시하기 시작하더니, 반복적으로 엄청난 분노를 쏟아붇다가 급기야 육군 총사령관을 해임하고 자신이 총사령관을 겸임하기에 이른다.
또, 독소전쟁이 장기화될 수 밖에 없다고 예상했다면 (또는 의도했다면) 적국의 국민들을 회유하여 (최소한 내 편이 되지는 않더라도) 파르티잔으로 결사항전하는 사태는 막았어야 하지만, 히틀러는 스스로 독소전쟁이 국민전쟁으로 파국에 치달을 수 밖에 없도록 독소전쟁의 목표를 슬라브 인종의 절멸 또는 노예화를 선언하면서 소련 인민을 학살하고 포로를 즉결처형하는 비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전쟁의 성격과 수행 방법론 사이의 심각한 괴리가 전쟁 시작부터 형성되었고 끝까지 유지된다.
즉,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완성도 있게 수행하지 않으면서, 군사 전문가의 '일'을 뺏으니.. 단기적으로는 독일군의 화력에 의존해서 승리할 수 있었으나, 그 승리가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결국, 양국의 전력 균형이 무너지고 소련이 다시 거세게 반격을 시작했을 때..
독일 육군의 리더들은 영리하게 퇴각하면서 함정을 파고 그 함정에 빠진 소련군을 섬멸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교착상태에 빠트림으로 '휴전 협상'을 이끌어내는 이동 방어를 제안했으나,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정신을 들먹이며 한치도 물러서지 말고 전선을 사수하라는 지시를 하달한다.
역시 자신이 수행 해야할 역할이 아니었던 이 지시를 끝으로.. 나찌 독일은 휴전의 형태로 전쟁을 그나마 덜 불행하게 마무리할 기회를 영영 잃고 만다.
히틀러는 자기 자신을 불세출의 영도자로 믿었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놀라운 명령'을 내리는 지위에 있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다.
리더쉽은 ‘지위’가 아니라 조직에 필요한 일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단지 ’기능‘이라는 걸 히틀러는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조직은 자신만의 특수한 사정이 있고, 그 조직을 둘러싼 환경 역시도 쉬지않고 변화하기 때문에 리더쉽의 기능은 바로 이것이다..라는 식으로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자신이 현재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능의 수행은 적절한지에 대해 수시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순환논리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 속에서 자기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기능'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 재정의 그리고 진화가 리더쉽의 본원적인 '기능'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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