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단편소설 '칼레파 타 칼라'의 제목이 된 '칼레파 타 칼라'라는 문장은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수업'에서도 다시 발견된다.
이문열은 '칼레파 타 칼라'에서 선동과 포퓰리즘으로 엉망이 된 나라를 보여주면서, '칼레파 타 칼라'라는 한 문장으로 소설을 마무리 짓는 데,
이문열은 '칼레파 타 칼라'를 "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로 해석한다.
그리고 30년이 더 지난 후,
지금의 한강은.. 칼레파 타 칼라가 해석될 수 있는 세가지 가능성을 모두 제시하고 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결한 것이다"
'칼레파 타 칼라'의 첫번째 어절 '칼레파'는 형용사로 '어렵다'는 의미이고, '타'는 정관사, '칼라'는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명사이고, 그리스어는 Be동사 없이도 형용사가 동사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어순 즉 단어의 배열이 문장의 본질적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므로,
위의 세가지 가능성 중에서 두번째,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가 일견 가장 일반적인 해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칼레파'와 '칼라'의 어원이 같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즉, 동어 반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칼레파 타 칼라'라는 그리스어 문장이 알려지고 인용되게 된 계기 중에 대표적인 것은,
플라톤의 대화편 '대 히피아스'의 마지막 문장이다.
소크라테스는 '과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히피아스와 특유의 산파법으로 대화를 진행하다가..
히피아스라는 대화상대를 잘못 선택한 것에 대한 자책이었는지.. 아니면 피곤해서였는지,
구체적인 깨달음이 주고 받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약간은 무성의하게 "많이 배웠습니다"라는 영혼없는 칭찬 후에) '칼레파 타 칼라'라고 한마디를 남기고 대화를 끝낸다.
소크라테스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움이라는 건.. 어려운 것이니, 그냥 포기하며 살자?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온갖 비난과 오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집요하게 파들어가는 소크라테스의 평소 성향을 본다면, '아 어려워..'라고 대화를 끝냈을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를 적절한 번역 또는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즉,
"아름다움은 (우리가 추구할 만한) 고결하고 멋진 것이다 (조금 더 탐구해보자)"정도가 소크라테스가 의도한 '칼레파 타 칼라'라는 기표에 담긴 기의였을 것이다.
이문열은 "타 칼라(아름다움)"를 '좋은 일'이라고 비틀어 번역하면서,
그 '좋은 일'이라는 것은 이상적인 환상일 뿐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라고 규정하지만,
한강에 와서는 '타 칼라(아름다움)'이 '어렵다'라는 수식어로 한정 지어지기 보다는 아름다움과 어려움이 같은 속성을 가진 두개의 다른 표현으로 다시 제시된다.
즉, 어렵기 때문에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함께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니 환상일지라도 또는 좌절할지라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무언가로 재탄생한다.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처음에는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한 단어였다는 것을, 밝음과 색채 역시 그렇게 한 몸이었다는 것을 그때 만큼 생생하게 실감한 적은 없었다... 집에 가자" - 한강, '희랍어 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