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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단상

임무형 지휘 체계

by pied_piper33 2024. 10. 10.
 
"적과의 첫 접촉 이후까지 살아남는 계획은 없다 (Kein Plan überlebt die erste Feindberührung)"

19세기 독일 군사학의 기초를 다진 '몰트케'가 남긴 말이다.

적군에 대해서 아무리 치밀하게 조사하고 거기에 근거해서 작전을 세우더라도 적에 대해서 100% 알고 있지 않는한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는 당일의 지형과 기후, 주변의 상황을 전부 다 남김없이 미리 꿰뚫고 있지 않는한 벙커에서 세운 계획이 전투 개시 이후까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즉, 적과의 접촉을 통해 새롭게 발견된 정보를 기반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작전은 즉시 다시 세워져야 하고 바로 실행되어야 한다.

미리 세워둔 작전을 고수하거나 헤드쿼터에 보고해서 새로운 작전을 다시 수령하는 동안, 병사들은 속절없이 희생되고.. 새로운 작전을 받는 시점에 가서는 이미 전투를 패배했으니 역시 그 작전도 무용지물이 될 확률이 높다.

여기서, 그 유명한 독일군의 '임무형 지휘'체계가 등장한다.

임무 즉, What에 대한 헤드쿼터와의 일관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결과를 창출하기 위한 How를 현장의 지휘관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독단적이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지만 독일 군사학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병사들이 희생되고 지휘관 자신도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린다. 전투 현장에서는 독단적이라고 할 만큼의 과감한 결정과 실행만이 승리의 가능성을 (+)로 만들 수 있다)

현장의 데이터는 현장에서 분석하고 프로세싱해서 정보로 만들고 현장에서 결정해서 작전에 반영한다.

현장의 지휘관은 전투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헤드쿼터의 상사가 하는 지시 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명확한 권한과 책임 아래에서 주도적으로 싸우고 승리를 쟁취하는 능동적 존재여야 하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현장 지휘관에 대한 타이트한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현장 지휘관을 위한 트레이닝은 의사결정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수많은 전투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당시의 작전의 특징과 한계를 이해하고 앞으로 닥치게 될 역사상 한번도 없었을 자신이 마주 대하게 될 전투에서 능동적으로 정보를 다루고 작전을 세우고 실행하는 역량을 배양시켜주는 컨텐츠로 채워져야 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가 제기될 수 있다.

아직 타이트한 트레이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현장 지휘관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지 말고 헤드쿼터의 지시를 따르게 하는게 효과적인가?

아니면, 타이트한 트레이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도 현장 지휘관에게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어야 하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게 효과적인가?

다양한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겠으나.. 현장의 정보가 수집되고 헤드쿼터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정보의 선명도가 떨어지고 내용이 오해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헤드쿼터가 내려주는 지시의 퀄리티 역시도 보장될 수 없으니, 충분한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하더라도 현장에 책임과 권한을 위임하고 현장의 정보를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게 옳다.

이 과정을 통해 지휘관의 현장 대응 역량이 자연스럽게 상승되는 결과까지 기대한다면 책임과 권한을 체계적으로 위임하고 스스로 운영하도록 하는 건 중장기적인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CEO가 아무리 천재라도 현장과 헤드쿼터의 연계에 대한 기업문화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조직 전체의 아이큐는 세자리수에 근접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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