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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단상

99%의 준비와 1%의 결전

by pied_piper33 2024. 10. 9.
독소전쟁이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동안 독일과 소련의 권력 상층부에서는 서로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우수한 군사 엘리트를 방대하게 보유했던 히틀러는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에게 군사적 권한을 집중시키고 야전에서의 전술까지도 세밀하게 지시한다.
이를 통해 몰트케 이후 발전되어 온 야전에서의 창의력과 순발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소위 '임무형 작전'체계가 무너지고 독일군은 히틀러의 지시를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군대로 변했다.
그리고, 사령관급의 장성들도 하나하나 해임되고 히틀러의 말에 순종하는 인력으로 대체되었다.
독일은 전쟁 초기에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 깊숙히 진격한 독일군은 적절한 보급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히틀러의 군사적 합리성이 결여된 변덕스러운 지시를 수행하면서 죽어갔다.
소련에서의 상황은 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군대의 최고 간부 101명 중 91명을 체포했고 그 중 80명을 총살했다. 소련 연방원수도 5명 중에 3명이 총살당했다.
일본의 군사학자 오키 다케시는 군사 전략 측면에서 이미 소련이 독일보다 훨씬 더 발전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소련의 군사 전략 방법론을 완성시킨 미하일 투하쳅스키도 이때 스탈린의 손에 죽었다.
권모술수와 처형 이외에는 어떠한 능력도 없었던 스탈린은 전쟁이 시작되자..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고 그러는 동안 소련은 무참하게 무너졌다.
그렇게 실패의 경험이 쌓이는 동안,
스탈린은 전쟁 수행과 관련하여 개입하지 않기 시작했고 소련 최고 장성들의 의견에 귀를 귀울이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어디에 집중하여 어떻게 공격하라는 전술적인 부분까지 지시하고 강요했으나 점차 그런 행동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기 시작했다.
산업생산과 운송 그리고 병참에 대한 난이도 높은 의사결정 이슈들을 몰로토프와 베리야 등의 유능한 인재들이 스탈린의 승인없이 능동적으로 결정하고 신속하게 실행했다.
결국, 전쟁이 지속되면서 소련은 지도부에 속한 리더들이 각자 특정영역에 대해 책임지고 운영하는 매우 효과적인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었고,
스탈린은 여기에 손대지 않았다.
스탈린은 또한 소련 공산화 이후 철저하게 탄압했던 러시아 정교회에 화해의 손을 내민다. 총대주교 임명을 허가해주고 비행기를 동원해 정교회의 활동을 도왔다.
끔찍한 전쟁에 국민들을 계속 몰아넣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의 힘이 필요했다고 인식했다.
이렇게 스탈린의 소련은 자신이 보유한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초기의 엄청난 패배를 딛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다만, 전황이 안정되고 승리의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시작하자.. 스탈린의 본성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들은 다시 반국가분자로 몰린 후, 숙청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한고조 유방은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로 ❶ 소하의 살림살이(병참 운영) ❷ 한신의 야전 ❸ 장량의 전략..를 들면서 치하한다.
전쟁은 99%의 준비와 1%의 충돌로 구성된다.
1%의 충돌에서만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던 항우의 패배는 어쩌면 전쟁 초기에서부터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99%의 준비 역시도 전략, 작전, 식량, 운송, 생산, 이동, 선전, 외교, 첩보와 같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승리를 만들어내는 리더쉽은 결국.. 조직관리의 이슈로 귀결된다.
히틀러는 조직을 무력화시키는 선택을 했고 스탈린은 조직력을 강화시키는 선택을 했다.
모두 패배했어야 하는 그 싸움에서 스탈린이 이겼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렇게 미친 놈과 악마의 싸움은.. 전쟁초기의 실패로부터 조직 관리의 금도(襟度)를 깨닫고 잠시 기만적으로 실행한 '악마'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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