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닿는 겨울 바람이 차갑고 따갑다.
주역의 20째 괘 관(觀)은 땅을 의미하는 곤(坤) 위에 바람을 의미하는 손(巽)이 놓여져 있는 형상이다.
땅 위에서 이리저리 불어닥치는 바람이 온갖 사물을 뒤흔드는 장면에 수천년 전에 살았던 주역의 저자는 눈으로 똑똑히 본다는 의미의 '관(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주문이다.
주역의 주인공은 군자, 즉 세상을 보다 이로운 곳으로 바꾸려는 선한 의지를 가진 리더이다. 리더는 보이지 않는 걸 봐야 한다. 뭘 봐야할까..
觀 我 生進退
관아생 진퇴
갑골문과 고고학 유물 발굴의 성과로 '나'를 의미하는 한자 아(我)의 의미를 조금 더 상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갑골문에 나오는 아(我)는 창(戈)과 유사하게 생긴 무기의 형태인데, 날카로운 톱날이 붙어있어서 일반적인 창보다는 더 치명적인 형상이다.
아(我)는 일인칭 단수의 '내'가 아니고, 서슬퍼런 무기를 들고 외적으로부터 반드시 보호하고 지켜야하는 '우리'를 의미한다.
군자는 '우리'가 과연 살아서 전진할 수 있는지(生進), 아니면 살기위해 후퇴해야하는지(生退)를 직면해서 똑똑히 응시해야 한다. 현실을 마주하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한다.
살아있어야 전진도 할 수 있고 후퇴도 할 수 있다.
觀 國之光 利用賓于王
관 국지광 이용빈우왕
군자는 아직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나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내 몸을 그리고 나를 믿고 따라오는 식솔들을 의탁해야 한다.
불의한 자에게 나를 의탁하면 나도 함께 불의를 행하게 되고, 내가 지금까지 닦아온 모든 역량은 불의의 도구가 된다.
무능한 자에게 의탁하면, 무능한 자의 욕망을 위해 헛되이 소진되어 버린다.
군자는 내가 머물고 있는 나라에 과연 빛이 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하고, 이 나라의 왕이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하는게 나와 우리에게 이로운 일인지 보아야 한다.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 자격없는 군주를 위해 세월을 낭비하는 일은 수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한번 사는 인생이다. 나의 역량만 볼 게 아니라, 내가 처한 곳에 빛이 있는지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이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해볼 차례다.
주역의 저자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양해야하는 보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童觀 小人无咎 君子吝
동관 소인무구 군자린
어린아이처럼 사물을 바라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군자는 어린아이처럼 표면에 드러난 것에 반응하여 울고 웃어서는 곤란하다.
군자의 표정 하나하나, 말 한마디는 백성의 그것과 무게가 다르다. 군자의 작은 행동은 백성의 눈에 포착되고 해석되고 무리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현상 이면의 원인에 대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느껴지는대로 일희일비하는 반응 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하는 조치를 현명하게 취해야 한다.
주역은 어린아이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건 어린아이게는 적합하지만, 군자는 낭패를 겪게 된다고 경고한다.
주역은 엿보는 행위(闚觀)에 대해서도 적절치 않다고 이야기한다.
보는 행위 즉 관측은, 관측 당하는 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관측 행위 자체가 대상에게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한가지로 고착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소위 비선에 의해서 판단을 하는 리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업적에 의해서 평가받고 승진 또는 해고 당하는지 알 수 없다. 당연히 자신의 역량을 최적화해서 발휘할 수 없다.
비선을 통해 조직 구성원의 역량을 파악하는 건 전형적인 엿보는 행위에 해당한다.
기업 조직이 건강하게 움직이고, 평가를 통해 조직이 더욱 정예화되고 팀워크가 강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언제 어떻게 관측되고 헤아려지는지 투명하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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