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번째 괘 화뢰서합과 22번째 괘 산화비를 통해, 질서가 있으면서도 자유롭고 창의적인 조직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주역의 세계에서는 이제 어떤 다음 장면이 펼쳐질까..?
23번째 괘 산지박(山地剝)은 속절없이 감내해야하는 거대한 불운을 이야기한다.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붙은 시기를 지나니 다시 불운이 시작된다. 주역의 저자는 이렇게 맘처럼 안풀리는 현실을 현실보다 더 극단적으로 묘사한다.
산지박 괘는.. 아래로부터 음효가 쌓여서 괘 전체를 가득 채우고 제일 위에 한칸에만 양효가 남은 형상이다. 마지막 잎새처럼 위태롭다.
剝牀以足 蔑貞 凶
박상이족 멸정 흉
상(牀)은 지금 내가 앉아있는 자리(평상, 지위, position) 의미한다.
운명은 내가 있는 자리의 다리를 망가뜨린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간직하고 지켜온 가치를 멸시한다.
剝牀以辨 蔑貞 凶
박상이변 멸정 흉
운명은 내가 있는 자리의 테두리(변)를 망가뜨린다. 그리고 계속 멸시한다.
剝之无咎
박지무구
운명이 나를 망가뜨리고 괴롭히는 것은 허물이 없다. 이렇게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하는게 세상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나를 힘들게 한다고 해서 운명의 신이 무언가 잘못한 건 아니다. 이 역시 자연의 순리일 뿐이다.
剝牀以膚 凶
박지무부 흉
운명은 이제 내 자리를 망가뜨리는 수준을 넘어서, 내 몸까지 괴롭힌다.
貫魚以宮人寵 无不利
관어이궁인총 무불리
운명은 내 사람들을 나로부터 뺏어서 데리고 간다. 하지만, 내 사람들은 나를 떠나서도 사랑받으면서 잘 살고 있다.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석과불식 군자득여 소인박려
괘를 구성하는 아래부터 다섯번째까지의 음효의 주어는 운명이었지만, 마지막 남은 양효의 주어는 '군자'이다.
상구는 이러한 상황에서 군자가 취해야하는 바른 대응을 이야기한다.
석과불식은 신영복 선생의 글로 유명해진 구절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씨 과일은 먹어서 없애지 말라는 뜻이다.
고통의 극한에 다라랐더라도 희망의 증거가 되는 무언가는 지키고 간직해야한다. 그것이 내가 고통을 겪는 이유가 될 것이고, 고통을 통해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고 도저히 방어하지 못하는 불운의 연속에 주저앉아 있더라도 지켜야할 것은 지켜야한다.
불운도 언젠가 지나가기 마련이다. 나에게 닥친 것도 자기 맘대로 였으니, 떠나는 것도 예측할 수 없다. 말없이 그냥 가버린다.
주역은 불운이 지난 후, 석과불식에 성공한 군자는 수레를 얻고, 마지막 씨 과일까지 먹어버린 소인은 오두막까지 잃는다..고 설명한다.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면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미워하는게 자연스럽다.
다만, 씨가 될 마지막 과일 하나는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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