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24번째 괘 지뢰복을 통해 희망의 가능성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렇다면 희망을 품게 된 사람은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가?
无妄 往 吉
무망 왕 길
한자 망(妄)은 중심에서 벗어난 모습을 의미한다. 주역은 중심을 단단히 붙잡은 사람에게 '떠나라(往)'고 조언한다.
不耕 穫 不菑 畬 則利有攸往
불경 확 불치 여 즉리유유왕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상황이라면, 즉 내 꿈을 펼칠 수 없는 곳에 부적절하게 몸을 두고 있다면 노력하지 않아도 성과를 얻을 것이지만(不耕穫), 그 성과는 부끄럽고 열심히 노력해도 후속 작업이 이어지지 않아서 방치되어 버릴테니(不菑畬) 엉뚱한 곳에서 굳이 애쓸 필요없다.
이럴 때는 '떠남(往)' 그 자체가 행함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无妄 行 有眚 无攸利).
无妄之災 或繫之牛 行人之得 邑人之災
무망지재 혹계지우 행인지득 읍인지재
하지만, 길을 떠난 사람에게도 후회할 만한 일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떠나기 전에 내가 (외양간에) 메어둔 소를 지나가는 사람이 가져가 버린다. 먼길을 떠나는 사람은 아무리 아까운 마음이 들더라도 가지고 있던 모든 걸(소) 들고 갈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두고가야 하지만 내가 땀흘려 만든 열매(소)를 타인이 누리는 걸 봐야하는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그래서 주역은 이를 떠난 사람이 마땅히 겪을 수 밖에 없는 재앙이라고 표현한다.
可貞 无咎
가정 무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지킬 수 있으면 허물이 없다.
无妄之疾 勿藥 有喜
무망지병 물약 유희
큰 뜻을 품고 길을 떠난 사람은 병을 앓는다. 앞 문장에서 유추해본다면 이 병은 미련이고 후회인 듯 보인다. 주역은 이 병에는 약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어설프게 치료를 시도하기 보다는 그 고통을 선명히 느끼면서 견디는게 옳다.
떠남이라는 건 원래 그런 것이다. 그렇게 견디다보면 떠남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맛보는 순간이 찾아온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희망을 품을 수 있게된 당신은 이제 무엇을 버리고 어디로 떠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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