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역과 CEO

주역과 CEO 17 - 택뢰수 澤雷隨

by pied_piper33 2024. 4. 4.

16번째 괘 예(豫)를 통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일할 팀이 만들어졌다.

사람을 얻었으니, 이제 리더쉽을 생각해 볼 차례가 되었다.

리더쉽이라는 말은 사실 현실에서는 무력하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앞에서 아무리 감언이설로 또는 힘으로 리드하더라도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리더쉽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서 followship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리더쉽을 이야기하는 주역의 17번째 괘 택뢰수(隨)는 따름, 즉 followship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出門交 有功
출문교 유공
"문 밖으로 나가서 사귀면, 사람들이 애쓸 것이다"

리더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사람을 맞는 건, 지위를 자랑하는데에는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으로는 최악이다. 자리에서 내려오고 문 밖에 나가서 만나고 사귀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얻고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여기서 공(功)은 갑골문을 보면, 사람이 손으로 도구를 다루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결과물로서의 공적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애씀을 의미한다.

사람은 나를 존중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나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을 위해 나도 수고하고 싶어지는게 자연스럽다.

係小子 失丈夫
계소자 실장부
"작은 것에 얽매이면 큰 것을 잃는다"

작은 것도 얻고 큰 것도 모두 얻을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쉽지 않다. 작은 것을 지적하고 챙기다보면 큰 것을 놓칠 확률이 높아진다.

어떤게 작은 것인지 모르는 리더는 많지 않다. 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작은 것을 참고 큰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인내와 긴 호흡을 갖추는게 어려울 따름이다.

係丈夫 失小子
계장부 실장부
"큰 것에 얽매이면 작은 것을 잃는다"

어쩌라는 얘기인지..

利居貞
리거정
"일관되면 이롭다"

작은 것에 얽매이면서 작은 성공을 추구할 것이라면 그렇게 쭈욱 가는게 옳다. 반대로 큰 성공을 꿈꾼다면 작은 것에는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리더가 사사건건 작은 것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의 시야를 좁혀 놓은채 크고 원대한 성과를 추구한다면, 조직은 자아분열적인 상황에 빠지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워진다.

followship이 형성되기 어렵고, 리더의 변덕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교언영색 전문가가 힘을 얻게 된다.

隨 有獲 貞凶
수 유획 정흉
"따름이 사냥하는 정도에 멈춘다면 일관되더라도 흉하다"

갑골문과 금문에서 획(獲)은 사냥개가 새를 좇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followship이 함께 힘을 모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보다는 왕의 즐거움을 위해 사냥터에서 새나 쫓아다니는 모습으로 실현된다면 옳지 못하다.

이런 형태의 followship이 형성되면, 시간이 지날 수록 리더의 곁에 사자, 호랑이, 코끼리는 떠나고 새나 따라다니는 사냥개만 남아있게 된다.

결국, 주역은 위의 '장부(丈夫) vs. 소자(小子)'의 긴장 관계에서 장부의 손을 들어준다.

물론, 작은 것을 추구하면서 소소하게 사는 것도 괜찮다. 다만, 하늘이 준 대운을 얻은 사람들이 또는 대운을 얻고 싶은 사람이 취해야할 처신이 아니라는 얘기로 이해하면 된다.

孚于嘉 吉
부유가 길
"아름다움 위에 믿음이 형성되어야 대운이 유지될 수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건,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의를 의미한다. 리더의 영도력에 대한 믿음이 조직력의 출발점이어서는 곤한하다. 리더가 신이 아닌 이상 그 믿음이 지속되기 어렵다.

拘係之 乃從維之 王用亨于西山
구계지 내종유지 왕용형우서산
"사냥개가 주도한다. 곧 모든 사람들이 사냥개에 엮이며, 왕의 다스림은 해가 지는 곳에서만 형통하다"

주역 저자의 유머가 들어있는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앞에서 큰 것에 얽매일 것인가, 아니면 작은 것에 얽매일 것인가를 고민했다.

수 괘의 결론인 상육에서는 그 고민을 허탈하게 만든다. 내가 주도하여 얽매일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係丈夫와 係小子의 생략된 주어는 주역의 주인공인 '군자(君子)'였다. 하지만, 상육에서 새로운 주어가 등장한다. 그래서 주역의 저자는 주어가 드러나도록 삽입한다. 拘係之... 개 구(拘), 즉 사냥개가 주어가 되고, 지(之)가 지시대명사로 everything을 의미한다. 사냥개가 모든 것을 얽맨다.

새나 쫓아다니도록 사냥터에 데리고 다니던 사냥개가 주도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 조직 구성원은 모두 사냥개가 인도하는 곳으로 돌진한다. 하늘의 운을 얻었던 제국은 이렇게 쇠락의 시기를 맞게 된다.

수 괘가 전하는 통찰을 정리해보자. 성과를 만드는 제대로된 followship이 형성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리더가 문 밖으로 나가서 함께 일할 구성원을 모셔야 한다.
2. 리더는 구성원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대의를 추구해야 한다.
3. 리더는 대의가 아닌 작은 것에는 초연해야 한다.
4. 사냥과 같은 리더의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하늘이 준 운을 소진해서는 안된다.

주역이 묘사하는 세상에는 어정쩡한 중간은 없다. followship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경우, 평범한 조직이 되어 평범한 성과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사냥개가 주도권을 쥐면서 다같이 쇠락하는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