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귀신을 섬겨야 합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단호하게 답한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귀신까지 섬길 수는 없다'
귀신에 의한 길흉화복은 공자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귀신을 향해 복을 비는 행위인 제사에 대해서는 모호한 스탠스를 보인다.
"귀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귀신이 그 자리에 와있는듯이 제사를 지내라"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지혜롭다"
귀신을 멀리하면 지혜롭다고 말하면서, 제사를 지낼 때는 귀신이 실존하는 듯이 정성을 다하라는 공자의 가르침은는 이율배반적이다.
아마도,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고 갈등을 피하기 위한 중간 타협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중용'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공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중용의 도를 지키는 사람을 얻을 수 없다면, 앞뒤 안가리고 도전하는 사람이나(狂), 뒤로 물러나 재고 따지면서 멈출 줄 아는 사람(狷)과 함께 일하겠다"
사람 마음은 다들 비슷하다.
완벽한 인재를 구할 수 없다면, 명확한 장점을 가진 인재를 차선으로 택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차선이 현실 공간에서는 최선일 것이다.
공자 역시 스스로 광(狂)도 견(狷)도 아니었고, 인과 의 그리고 중용을 추구했으니, 당연하게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로부터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춘추전국시대 내내 기회를 얻지 못한 떠돌이 집단의 이론이었던 공자의 사상은, 한나라 유방에 의해 중원이 통일되고 한무제 때에 이르러 지배 체계가 공고해진 이후 국가의 통치 철학이자 사회 윤리로 떠받들어지게 된다.
기업 역시도 시장이 감동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고 경쟁 회사를 부숴버리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미쳐있거나 단단한 특징을 명확하게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물론, 기업이 시장을 완전히 정복하고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난 다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직 내부의 안정을 위해 둥글둥글 모나지 않고 시장과 고객을 바라보기 보다는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을 원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원한다면 광견(狂狷)의 인재를,
권력의 유지를 원한다면 중용(中庸)의 인재를 택하는게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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