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5년 후금이 조선을 쳐들어왔다. 조선군은 속수무책으로 패했고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
군사력의 우열이 명확했으나 명나라와의 일전을 앞둔 후금은 굳이 조선에 힘을 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후금과 조선이 형제관계가 되는 내용의 맹약을 맺으면서 전쟁은 마무리되었다. 정묘호란이었다.
그후 8년이 지난 인조 13년, 후금의 수도 심양에서는 홍타이지가 황제로 즉위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명나라 정복을 눈 앞에 두고 있었고, 칭기즈칸의 옥새까지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자연스러웠다.
신하들은 홍타이지에게 황제로 즉위하라고 간청했고 홍타이지는 아직 자격이 없다고 겸양의 모습을 보이는 롤플레이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타이밍이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홍타이지는 신하들에게 '형제 국가인 조선에게 황제 추대에 대한 의견을 물으라'고 명령한다. 이 역시 요식행위였다고 보는게 맞다.
불과 8년전에 후금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망할 뻔했던 조선이 과연 부정적인 의견을 낼 가능성은 없다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후금의 사신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 서울의 분위기는 '오랑채 추장의 앞잡이인 저들의 목을 치라'는 성토 그 자체였다. 사신들은 '추대'에 대해 제대로 논의를 해보지도 못하고 쫓겨나듯 돌아간다.
홍타이지는 순진했고 조선은 어리석었다. 이제 홍타이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자신의 황제 즉위를 반대하면서 형제 관계를 스스로 거부한 조선을 응징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병자호란이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극이 벌어졌다.
事以合交 德以合人
사이합교 덕이합인
제나라를 춘추전국시대 첫번째 패자로 올려놓은 재상 '관중'은 책 관자를 통해는 리더의 행동 원칙으로 '조직 간의 사귐은 일로써 하고, 사람 사이의 사귐은 덕으로써 하라'고 주장한다.
리더는 '조직'을 대표하여 일하는 사람이다. 조직의 이익과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다른 조직과 교류해야 한다.
여기에는 사사로운 의리와 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하지만, 사람으로서의 리더는 상대 조직의 리더를 인품으로 감화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작은 오해가 큰 불행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1635년에 조선을 다스리던 임금과 리더들은 홍타이지의 황제 즉위를 막을 힘이 없었으며 그들의 보복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외교를 '명분(德)'로 다스리니,
사람이 '전쟁(事)'으로 비참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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