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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군서, 혁신의 지도

상군서 - 일을 쉽게 만든다.

by pied_piper33 2024. 11. 14.

2003년 늦은 가을이었다. 새로 입사한 H사에서 부장님이 나에게 2004년 D사업부 사업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셨다.

관리회계 데이터를 모아서 2003년 성과를 집계하고, 2003년처럼 흘러갔을 때 2004년은 어떤 모습이 될 지 시뮬레이션 한 후에 여러 이해관계자들로부터 회사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듣고 사업에서 추가할 것과 제거할 것을 반영하여 2004년을 다시 그리면 되는 일이었다.

작업을 하다보니 작년 사업계획 담당자였던 선배가 옆에 와서 말을 한다.
"그 데이터는 꼬리표가 00으로 붙어있지만 실제로는 ★★ 이니까 ★★ 로 계산해야 합니다"

문제는 꼬리표와 실제 담긴 내용이 서로 다른게 한두가지가 아니라 거의 모든 데이터가 그런 실정이었다. 뭘 하나 하더라도 과거의 히스토리를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물어봐야 했다.

또 선배가 말을 건다.
"윗분의 의중은 이러이러한 것이니, 숫자는 무조건 이러이러하게 나와야 합니다"

또 조언을 한다.
"◼︎◼︎님과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나중에 다른 얘기하면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니 그분과 만나서 미리 합을 맞추세요"

'음.. 어렵네..'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일의 난이도가 갑자기 너무 높아졌다. 물론 그 난이도는 가치의 창출과는 관계없었다.

상군서는 '간령'편에서 농업을 부흥시키는 방안으로 '농사일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사일을 쉽게 만들기 위해서 먼저 손을 봐야할 것은 '정부 관리'였다.

1. 관리가 농부에게 고통스러운 존재가 되면 안된다
- 세금 제도를 공평하고 단순하게 만들어서 관리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농부가 휘둘리지 않는다면 농부는 관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며 농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2. 농사 짓지 않으면서 먹는 사람을 줄인다
- 농사 짓지 않는 사람의 숫자가 커지면 농부의 부담이 커진다. 관리들의 녹봉이 높으면 곤란하며 세금을 많이 거두면 안된다.

두번째로 고쳐야할 것은 지주였다.

3. 농사를 지을 때 일꾼의 사용을 금한다
- 대지주가 아무리 많은 땅을 가지고 있더라도 일꾼을 사용하지 못하니 스스로 농사를 지은 만큼만 먹을 수 있게 된다. 땅을 많이 보유해야할 이유가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농부가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세번째는 상업의 억제였다. 춘추전국시대의 농업 생산력은 오롯이 나라의 경쟁력이었다. 농산물을 다른 나라에 팔고 금비녀를 사는 일은 돈 많은 부자의 허영심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나 나라와 백성 모두에게 해로왔다.

4. 상인에게 부역을 시킨다
- 상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어도, 상인의 식구들은 모두 부역을 해야 했다. 그래서 차라리 농사를 짓자는 마음이 들도록 유도했다.

기업이 경쟁력이 있으려면, 기업 구성원에게 '일'이 가장 쉬워야 한다. 일이 어려워지면,

보고서 이쁘게 쓰기
윗사람 심기 살피기
상사와 취미생활 함께 하기
줄서기
높은 사람 의중 해석하기
충성 맹세
..와 같은 '일' 아닌 것들에 대한 전문가가 늘어나고, 그 전문가들이 대우받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된다.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노회한 능구렁이들의 목소리가 기업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한다.

일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
생각보다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