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초 CRM이 돈 먹는 하마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CRM 전문가와 CRM 전문회사들이 넘쳐났다. 나는 운좋게도, 국내에서 가장 돈이 많은 소위 '호구' 회사의 CRM 담당부서 직원이었기에, '갑'의 위치에서 국내외의 그 전문가들과 전문회사들을 만나서 함께 일하고 그들의 노하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내가 얻은 결론 하나는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이익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텔레마케팅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상황에서 당시의 외부 전문가들은 고객의 성향에 따른 화법(스크립트) 차별화와 고객의 반응에 따른 대응 방법 특히 거절처리 화법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설명을 (비싼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면서) 들을 때는, 마치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이 들었으나, 그들의 제안대로 마케팅을 해본 결과는 참담했다.
그들만 의지할 수는 없었다.
'내가 내 눈으로 문제를 직접 들여다 봐야 한다..'
당시, 나는 과거의 히스토리와 지금의 현상을 raw data 수준에서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마케팅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 몇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고객의 성향 차이는 '제공하는 컨텐츠의 차이' 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과,
고객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상태에서 설득을 통해 반전을 꾀하는 것은 그 순간에 반전이 될 확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설득의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설득 대상이 되어 긴 통화를 겪은 고객의 충성도를 급격하게 하락 시킨다는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고객의 성향을 예측하여 백만가지로 세분화 한 들, 고객에게 제공하는 컨텐츠가 몇개 없다면, 그 백만개의 과학적인 고객 세분화는 무용지물이니, 세분화하는데 들어간 인력과 비용으로 컨텐츠를 개발했어야 했고,
고객을 설득하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고객의 반응에 수긍하면서 다음에는 더 좋은 컨텐츠로 다시 뵙겠다고 물러나는 겸손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마케팅 전략은 수정 되어야만 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마케팅 전략 수정을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한채.. 운명의 장난에 의해 호텔리어로 변신을 해야했다 ^^;)
왜 외부 전문가의 조언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을까?
문제는 '호흡'이었다.
어떤 비즈니스 시도가 '이익'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최소 1년 이상의 지루한 관찰 및 미세조정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새로운 트렌드와 관련되어서 외부 전문가는 어느 하나의 특정한 비즈니스 상황을 1년이상 온몸으로 경험한 결과를 기반으로 조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조언이 아무리 옳아도 3개월 이상의 호흡을 가지고 있기가 어렵다.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 서비스에 대한 무용론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커리어에도 경영 컨설턴트로 잘먹고 잘살았던 6년의 기간이 존재한다 ^^;)
이익이라는 '성과 창출'이 외부 전문가가 만들어 줄 수 없는 지루하고 피곤하기만한 '나'의 일이라는 것을 잊을 경우,
내 손과 발에 장착된 보석같은 muscle memory를 쓰레기 통에 버리면서
지루하고 피곤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나'의 체력을 약화시키고
외부전문가의 호흡 짧은 논리에 매몰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이익 그리고 성장은 화려한 궁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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