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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즐거움

성선설의 가치 - 새뮤얼 보울스 '도덕경제학'

by pied_piper33 2024. 11. 1.
미국 보스턴 시의 소방청장은 소방대원의 휴가가 월요일과 금요일에 몰려있는 걸 발견하고는 유급휴가 허용기간을 줄이고 초과 시에는 급여에서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에 의해서 과연 소방대원들의 휴가 사용이 줄어들었을까?
 
반응은 소방청장의 기대와은 다르게 발생했다. 휴가의 경제적인 기회 비용이 크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이스라엘 하이파 시의 어린이집 6곳에서는 방과 후에 자녀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 대해서 벌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벌금이 부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각하는 부모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역시 이 경우에도 부모들의 지각은 크게 증가했다.
 
고전 경제학은 인간이 경제적인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단기적으로는 '정보의 부족' 또는 '불균형'으로 인해서 일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나, 정보가 충분히 공급되는 장기적에서는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케인즈는 합리적 행동이라는 가정을 부정한다. 케인즈에 따르면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경제적 의사결정까지도 야성적 충동에 따른다고 설명한다. 
 
사무엘 보울스는 케인즈가 제시한 야성적 충동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사람들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무의식적인 추구를 주장한다.
 
보스턴 시의 소방대원들은 '경제적 이익 극대화'만을 고려하여 자신의 휴가 이용 갯수를 결정하지 않았다. 소방대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공헌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도덕 의식이 휴가 이용 갯수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휴가가 도덕 의식과는 관계없는 단지 '비용'이 되는 순간, 소방대원들은 돈을 내고 휴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휴가 날짜를 정하기 시작했다. 소방대원들의 도덕 의식이 살아있을 때의 최적 '휴가 기간'과 휴가이용이 도덕 의식과는 관계 없는 '비용'일 때의 최적 '휴가 기간'은 동일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지각하는 부모들의 행동도 마찬가지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있다. 내 아이를 맡아주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과 내가 지각함으로 유발되는 미안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지각의 총량'이 결정되고 있었으나,
 
지각이 '돈'을 내고 구입할 수 있는 재화가 되는 순간, 부모들은 고마움과 미안함에 대해 자유로워졌다. 이제 부모들은 돈을 내고 어린이집에 천천히 아이를 데리러 가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돈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도덕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순간.. '돈'이 상상하지 못했던 이슈들이 발생된다.
 
라인홀트 니버는 도덕적인 인간들이 모여 비도덕적인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사무엘 보울스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애티튜드가 개별적인 인간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또는 비도덕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오히려 '돈'의 논리를 뛰어넘는 보다 더 효율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경제적인 인센티브는 물론 필요하다. 다만, 그 경제적 인센티브가 도덕의식을 구조적으로 대체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사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문화야말로 어쩌면, 자본주의가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 가장 거리를 두고 싶은 사이비 교리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오랜 지혜는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