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전기충격 장치를 설치한 상자 속에 쥐를 넣으면,
쥐는 전기충격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탈출을 시도하지만 시간이 약간 흐른 뒤 상자 속에 어떠한 탈출구도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면서는 탈출을 포기하고 '절망'을 받아들인채 전기충격이 그대로 발생하는 괴로운 바닥에 엎드린채 미동도 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절망'을 학습한 쥐와 '절망'을 학습하지 않은 평범한 쥐를 물에 빠뜨렸을 때,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에서 두 쥐는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절망을 '학습'한 쥐가 더 빨리 생존을 포기한다.
사실, 탈출구를 일부러 없애버린 수조가 아닌 이상, 물에 빠진 쥐가 죽음에 이를 확률은 매우 낮다. 발버둥치다 보면 어느 순간 물가에 도달하게 될거고, 실험용 수조였다 하더라도 실험자가 죽기 전에 물에서 꺼내줄테니 생존을 포기해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절망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절망의 상황을 증폭하여 미래에도 더 극단적인 최악의 절망이 다가 올 것을 걱정하게 된다.
환자의 '절망'을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치료하다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자살'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품에 넣고 만지작 거릴 수밖에 없었던 정신과 전문의 임세원 선생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삶의 어떤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를 맞이 하게 될 가능성은 최고의 경우를 맞이하게 될 가능성만큼이나 적다."
"다시 말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불행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이나 낮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 불안해지면, 이러한 통계나 확률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고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최악의 경우와 그 결과만을 자동적으로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한다. 즉, 재앙적 상황을 반복적으로 연상하는 것인데, 그로 인해 오히려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돌아보면, 직장생활을 20년 넘게 하면서 다른 동료 또는 다른 부서에서 실패한 프로젝트를 꽤 많이 떠맡았다. 그렇게 버려진 프로젝트들은 나에게 '나'를 세상에 보여줄 고마운 기회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약간은 자아분열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즉, 부하직원에게는 '내가 이걸 성공시키겠다. 나를 따르면 문제없이 다 잘 될 거다. 나를 믿어라'라고 확신찬 목소리로 설득하면서 일을 시키고,
나 스스로는 프로젝트가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다양한 버전으로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상상 속에서 고통을 겪고, 그 최악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밤새워 걱정하고 고민하고 대책을 세웠다.
부하직원에게는 또는 나에게 일을 맡긴 상사에게는 내가 가장 낙관적인 사람으로 비쳐졌겠으나,
나만 아는 내 마음에 숨겨진 '골방 속에서의 나'는 반복적인 최악의 상황을 연상하면서 즉, 반복적으로 '절망을 학습'하면서 가장 비관적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물론 이런 자아분열적인 사고와 행동이 내가 지금까지 누려 온 온갖 성취의 원천이 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다시 임세원 선생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렇다면 출구는 없는 걸까?"
"역설적이지만, 불안과 그에 뒤따르는 우울이 재앙적인 시뮬레이션에 의해 악화된다면, 같은 원리로 불안도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그 반대, 즉 행복을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이 해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리스크에 대한 꼼꼼한 대비가 '학습된 절망'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행복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습관이 필요하다.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긴 하겠으나,
막연히 꿈꿔왔던 행복의 모습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다시한번 정리해보는 것으로 임세원 선생이 제안하는 '행복의 시뮬레이션'이라는 걸 시작하면, 인생을 조금 더 멋지게 살아가는데 도움되는 아니 그냥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생명 유지장치'를 장착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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