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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즐거움

불행 사용법 - 카뮈 '페스트'

by pied_piper33 2024. 10. 28.
이럴수가.. 나에게도 불행이 닥쳤다. 어떻게 해야할까?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거역할 수 없는 불행에 대한 세가지 유형의 반응 또는 이해가 나온다.
 
도피..
 
이 모든 불행은 나와 상관없으니 바라보지 않으면 그리고 내가 떠나버리면 그만이다라고 믿는다. 하지만, 떠나는 것이야말로 불행을 예방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소설 속 도피 추구자는 결국 탈출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신의 섭리..
 
신부는 이 모든 고난은 우리를 사랑하는 신의 섭리라고 설교하지만, 섭리 어쩌구를 따지기 전에 곁에서 고통받는 이웃이나 돌보라는 반론에 부닥치고 교훈을 깨닫기도 전에 신부 자신도 숨을 거둔다.
 
반항..
 
이 무차별적인 불행이 자연의 원칙이라면, 이 자연을 만든 신은 '유죄'이며 인간은 이 원칙에 도전해야 한다. 카뮈가 결국 하고싶었던 얘기는 이 반항이었을 것이다.
 
카뮈는 세가지 유형의 틈 언저리에 네번째 유형을 숨겨두었다.
 
불행을 통해 행복해지는 사람..
 
불행(페스트)은 고독하면서도 고독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공범자로 삼는데, 그 공범자들은 타인의 괴로움으로 자신의 고독을 국소 마취한다.
 
김우창이 말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은 어쩌면 시대를 한탄하는 지식인의 실존적 모습일 수도 있겠으나 결국은 시대의 불행을 에너지로 살아가는 고독한 공범자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송두율이 제시하는 '불가능'의 역동성은 충분히 낭만적인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낭만을 버리면 어디에 쓰겠나?
 
까뮈의 페스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어쩌면 송두율이 말하는 그 '불가능의 역동성'을 실행에 옮기는 출발점으로서의 (실패가 예정되어 있더라도) 신의 섭리 또는 인생의 주어진 원칙을 거부하는 '반항'의 가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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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은 종종 ‘꿈’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적극적 행동보다는 이를 포기하게끔 만들기 때문에 ‘이상향’대신 아예 ‘해체’라는 의미를 풍기는 ‘불가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자는 데리다의 주장은 경청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불가능’은 이상향’과는 달리 현실이 가지고 있는 견고성과 친근성, 긴박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개념이 우리를 행동과 격정으로 충동한다고 보는 그의 주장에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역설이 담겨있다.
 
‘크게 의심하면 곧 큰 깨달음이 있으리라’는 몽산법어의 이 구절도 따지고 보면 같은 내용을 지적하고 있다. 커다란 의심이 안고 있는 긴장은 일희일비하는 가벼움이나 미지근한 냉소와는 달리 우리를 우리 문제의 본질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우리게게 진보는 단순히 미래를 낙관적으로 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긴장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객관화 할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 송두율, '21세기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