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내 구성원들의 소통은 동료간에서 수평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 수직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수직적 소통의 양상이 수평적 소통의 형태와 방법론까지도 실질적으로 규정하므로 기업의 경쟁력 관점에서는 상사와 부하 사이의 수직적 소통의 행태를 분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크게 '숙제 검사형'과 '문제 해결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상사가 부하에게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고, 결과물에 대해서 yes/no만 말하는 '선문답형 소통', 상사와 부하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상태에서 서로 하고 싶은 얘기만 전달하는 'Role Play형 소통'도 현실 사회에서는 꽤 많이 발견되지만 딱히 분석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제외한다)
숙제 검사형 소통이 주로 이루어지는 조직에서는,
상사의 의도와 취지를 파악해서, 상사가 원하는 답을 찾는 것이 부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된다.
상사가 스티브 잡스 정도되는 천재인거나 반신반인의 엄청난 존재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상사와 부하 간의 소통이 누적될 수록 보고서의 양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보고서의 퀄리티도 좋아지지만, 시장 및 고객으로부터는 어쩔 수 없이 멀어지게 된다.
더 정확하게는 상사의 숙제를 하느라 실무자들은 시장과 고객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상실하게 되고, 만에 하나 여력이 남더라도 자신의 눈과 귀 그리고 감정으로 시장과 고객을 바라보기 보다는 숙제 출제자이자 평가자인 상사의 시각으로 (숙제 해결을 위해) 시장과 고객을 들여다 보는 습관이 체화된다.
숙제 검사형 소통의 아웃풋은 주로 'pass or fail'의 형태를 띈다.
즉, 성공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아... 보고 잘 마쳤다. 이제 다음 숙제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좀 쉬어야겠다'는 형태의 insight가 부하와 실무자들에게 전달된다.
반면에, '문제 해결형 소통'이 주로 이루어지는 조직에서는 일반적으로 상사와 부하가 공유하고 있는 공동의 '미션'이 존재한다.
상사도 답을 모르고 부하도 답을 모르는 상황에서 소통을 통해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정해진 순서에 따라,
부하가 연구하고 분석한 결과를 상사와 함께 논의하면서 분석 결과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Test 또는 Execution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 해결형 소통이 이루어지는 조직에서는 '평가자'로서의 역할 보다는 Coach 또는 의사결정자의 역할이 상사에게 요구되게 되며,
부하직원에게는 '정보'를 생산하여, 수직 또는 수평으로 공급해야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숙제검사형 소통이 이루어지는 조직에서 부하직원은 '상사'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한 최소한의 정보를 골라서, 상사가 좋게 평가해줄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데 에너지를 집중할 수 밖에 없으나,
문제해결형 소통이 이루어지는 조직에서는 '상사'가 아직 알지 못하더라도,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는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 부하직원 관점에서는 보다 더 생존과 승진에 유리하다.
여기서는 아웃풋의 성패는 '상사'의 동의나 평가가 아니라, 시장 및 고객과 관련된 성과 창출 여부이므로 'pass or fail' 보다는 How Much 또는 How Many 관점에서 평가가 이루어진다.
문제해결형 소통은 소통이 누적될 수록, 문제해결에 필요한 정보와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경험이 구성원에게 쌓이게 됨. 일반적으로는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한, 이쁜 보고서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현실세계에서는 어느 한가지 유형으로 기업의 소통이 정의되기 보다는 문제해결형 소통이 이루어지는 조직으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성과가 나고, 성장 궤도에 진입하고 나면, 리더가 '숙제검사형 소통'을 즐기게 되는 형식으로 진화하거나,
반대로, 언제부터인지 모를 시기부터 숙제검사형 소통으로 점철된 조직이 되어 버린 상태에서 외부에서 채용된 리더가 '문제해결형 소통'을 시도하는 형식으로 조직 내 갈등 구조가 형성되거나,
상사는 대놓고 숙제검사만을 요구하고 부하도 최선을 다해 숙제 제출에 전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장에서의 성공'은 상사의 업적 그리고 '시장에서의 실패'는 부하는 과오로 기록되거나,
상사와 부하 모두 문제해결과 시장에서의 성과를 추구하지만 정작 평가는 '숙제검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거나,
뼛 속 깊이 '숙제검사형'인 꽉막힌 상사가 '문제해결형'인 가면을 쓰고, '문제해결'을 요구하면서 숙제만 검사하거나,
매우 똑똑한 '문제해결형'상사가 무식한 부하직원을 양성하는 동시에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문제를 단순화하여 '숙제'형태로 만들어서 부하에게 지시하고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거나,
숙제를 내고 검사를 할 여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조직 전체가 '문제 해결'에 전념하는 등의 다양한 variation이 나타난다.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는 소통의 누적이 '보고서'라는 이쁜 쓰레기의 축적이 아니라, '정보의 생산'과 '경험의 내재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 기업 내 각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숙제검사'와 '문제해결'의 관점으로 관찰해보는 것은 꽤 유용한 시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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