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물렁물렁, 몰랑몰랑, 말캉말캉, 물컹물컹..
탄성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어떤 물체에 대해서 묘사하는 한국어 표현은 이렇게나 많다.
이와 유사한 표현의 영어 형용사와 부사를 몇개나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을까?
역사학자 장지연은 책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에서 한국어의 의성어와 의태어가 유독 더 다양하게 발달한 이유를 한글에서 찾는다.
즉, 한글이 신분계층을 관통하며 조선사람들 전반에 확산되면서 조선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느낌을 글로 옮길 수 있었고, 그렇게 글로 기록된 느낌이 공감을 얻고 확산되면서 의성어와 의태어가 오래 지속되는 생명력을 얻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자에 익숙했던 정조도 심환지에게 보낸 한문 편지 속에 ‘뒤쥭박쥭’이라는 한글 표현을 삽입한다. 정조가 뒤죽박죽에 해당하는 한문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으나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기에는 한글이 보다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감정과 느낌‘을 언어로 전달했겠지만, 그 감정과 느낌이 날 것 그대로 ‘글’로 옮겨질 수 있느냐와 그렇지 못했느냐의 차이가 세월이 흘러서는 언어의 표현 성능으로 고착되어 버렸다.
이렇듯 글은 언어를 단지 담는 수동적인 저장매체를 뛰어 넘어 언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언어 사용자의 자기 표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언어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상승시킨다.
언어의 성능와 글의 관계를 기업 경영에 대입해서 다시 써보면 아마도 이렇게 될 듯 하다.
“기업 조직에서 글은 기업활동의 ’기록‘ 역할을 뛰어 넘어 기업 구성원의 소통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기업 구성원의 주도적인 자기 표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성능을 개선한다”
여러 기업을 경험하면서, ’글‘의 위상이 회사마다 상당히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웬만한 논의는 반드시 대면 상황에서 ’입 말‘을 통해서 해야만 하는 기업이 있었고, 어떤 논의라도 ’글‘로 충분히 가능하고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입 말‘로 보완하는 기업이 있었다.
’입 말‘의 위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업 내부의 정보 소통 효율이 떨어진다. 대면 상황의 ‘입 말’은 그 자리에서 휘발되기 마련이니 대면 상황에 있지 않은 나머지 구성원은 ’상상‘하거나 재구성된 내용을 전달 받을 수 밖에 없다.
결국, 권력자와의 입 말을 나누는 대면 상황을 얼마나 쉽게 만들 수 있느냐 또는 권력자와의 ‘대면’을 얼마나 능란하게 풀어갈 수 있느냐가 기업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간주되기 쉽다.
’글 말‘의 위상이 높은 기업에서는 소통의 결과물이 관련된 역할과 기능을 가진 구성원에게 쉽게 전파될 수 있으며, 소통에 참여한 구성원은 ’글 말‘ 이면에 담긴 뉘앙스를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소통에 있어서 시간/지리의 격리 그리고 관계의 한계가 어렵지 않게 극복된다.
(12살의 오펜하이머와 미국 광물학회 사이에 편지로 오고 갔었던 대화가 만약 대면 상황에서 말로 이루어졌다면, 미국 광물학회가 오펜하이머 선생님(!)을 초청하는 초유의 사태가 과연 발생될 수 있었을까..)
’글 말‘의 위상이 높은 상황에서는 글에 어떤 내용을 담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역량이 된다 . 쓴 사람이 스스로 두세번씩 자신의 논리와 근거를 점검할 수 있으며, 동료와 소속 조직의 리뷰를 받으며 집단지성이 활용될 수 있다.
그리고, 기업 구성원의 생각과 그 생각의 표현이 보다 적극적으로 글에 담겨지고 조직 내에서 유통되고 강화되고 발전하는 수순을 밟는다.
반면, ’입 말‘ 위주로 중요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조직에서는 임기응변 능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입 말은 전파될 수록 왜곡되고 과장 또는 축소될 위험도 크다. 심지어 입 말로 오고간 대화의 ’실체‘는 당사자들의 머리 속에서도 희미해진다.
여기에 더하여,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글’에 담아야하는 이유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글에 담긴 자신의 생각이 ’글 말‘의 메커니즘을 통해 평가되고 보완되는게 아니라, ‘입 말’의 상황에서 ‘입 말’의 메커니즘으로 난도질된다면 굳이 글로 기록을 남기지 않는게 유리하다.
증거가 없으니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입 말’로 적절히 빠져나가면 그만이다.
투명하면서도 효율적인 소통을 통해 경영성과를 높이고자하는 기업이라면 조직 내에서 ’글‘에 어떤 위상이 부여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5세기 이후 한국어에 ‘글’이 해주었던 역할은 21세기 지금의 기업 경영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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