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주장이 '과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주장 속에 포함된 인과관계를 다른 시간 또는 공간 속에서도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재현가능성(Reproducibility)이라고 부른다.
중력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과학적인'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뿐만 아니라 저 멀리 떨어진 은하계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재현될 수 있어야 한다.
2015년에 발표된 논문 '심리과학에서의 재현가능성 평가(Estimating the reproducibility of psychological science)'에서 브라이언 노섹 교수는 심리학 논문에 담겨있는 이론들의 '재현성'이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서, 심리학은 '과학'의 자격이 없다..는 식의 결론을 도출하면 곤란하다.
지구에서의 '수소 전자'와 달에서의 '수소 전자'는 동일하고, 중력을 포함한 4대 상호작용도 모두 동일하므로, 물리학에서의 인과관계가 우주 어디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될 수 있지만, '수소 전자' 그리고 '4대 상호작용'과는 달리 지구에 살고 있는 수십억명의 사람들은 모두 서로다른 성정을 가진 존재들이며, 그 각각의 사람들이 삶의 공간 또는 환경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또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다르게 변해 있을 것이다.
재현 가능성과 관련된 심리학의 ‘신뢰성 위기(crisis of confidence)'는 심리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나는 기업경영에서 '재현'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을 채용할 때도 '과거에 무엇을 해보았고 그 과정에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지식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라는 주장이 전부인 분 보다는 '어떤 시도를 해보았고 그 속에서의 경험은 새로운 시도를 위한 근육일 뿐이지 매뉴얼은 아니다'는 스토리를 얘기하는 분들에게 더 큰 매력을 느낀다.
물론, 채용 후에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도 전자는 이러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기 쉬우나, 후자는 불확실성에 직면하여 과거에는 요구되지 않았으나 지금 새롭게 돌출된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 자체를 일에 포함시키는 특징을 보여주는 경우가 꽤 많았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또다시 신비하게 변화할 기업경영 환경에서.. '과거'는 그저 지나간 세월이상의 가치를 갖기 어렵다. 물론 과거의 시행착오는 오래된 항해 지도로서 암초의 위치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나, 지금 내가 부닥쳐서 극복해야 하는 파도의 모양을 그려줄 수 없으며, 망망대해에서 패닉에 빠진 선원의 선상 반란을 제압하는 방법을 설명해줄 수는 없다.
문제는 '재현성'을 주장하는 인재에 대해서는 왜 이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근거 자료를 만들기가 쉽지만, '창조성'을 품고 있는 인재에 대해서는 사전적인 또는 사후적인 설명이 쉽지 않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최고 경영진은 '재현성'이라는 원칙이 변화무쌍한 경영환경에서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그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적인 인재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포지션에, '재현능력'의 근거를 문서화하기 용이한 가장 비창조적인 인재를 채용하여 투입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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