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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단상

혁신이 어려운 이유

by pied_piper33 2024. 10. 16.
현실 공간에서 혁신은 왜 실현되기 어려울까?
마키아 벨리의 책 '군주론'에 따르면 혁신이 어려운 이유는
1. 구체제에서 이익을 누리고 있던 '권력'을 혁신가는 적으로 대면하게 되고,
2. 새로운 체제에서 이익을 얻게 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혁신에 동참하지 않고 미온적으로 행동
..하기 때문이다.
혁신에의 적대자들은 막강한 힘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으나, 혁신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이 적대자들에 대한 공포를 떨쳐내지 못한다.
따라서, 지지자들은 혁신을 미온적으로 방어하지만, 적대자들은 당파적인 열정을 가지고 공격을 하기 때문에, 혁신의 리더는 언제나 위험에 처하게 된다.
혁신가에게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묻는다.
"너는 너의 힘으로 서있는가, 아니면 타인의 힘으로 서있는가?"
즉, 혁신을 밀어부치는데 있어서 자신의 힘만으로 가능한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점검해보라는 얘기이다.
마키아벨리는 타인의 힘에 의지하는 혁신가는 혁신이 실패할 뿐만 아니라 혁신가 자신 역시도 언제나 '나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고 단언한다.
이제, 몽상가나 이상주의자의 수준을 넘어, 현실 공간에서 혁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진정한 혁신가는, 권력을 만들고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정치가'로서의 역량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는 결론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군주론에는 '체사레 보르자'라는 문제적 인물이 등장한다.
로마냐 지방을 점령하는데 성공한 체사레 보르자는 세가지 큰 장벽에 부닥친다.
첫번째는 자신의 군대에 대한 불신이었고,
두번째는 경쟁가문인 오르시니파의 위협이었다.
세번째로 주변 강국인 프랑스의 변심 또는 배신 가능성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이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추가적인 영토확장과 점령한 영토에서의 개혁이 모두 불가능했다.
우선 체사레 보르자는 오르시니 가문의 추종자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면서, 오르시니 가문과 추종 귀족세력을 분리시킨 후 역시 매우 정중하고 관대한 대접과 선물로 유력 세력들을 포섭하고 오르시니 가문을 고립시켰다.
그렇게 힘의 우위를 확보하고 나서 체사레 보르자는 오르시니 가문에게 화해의 제스추어를 보낸다. 순진한 오르시니가 화해에 응하게 되고, 화해를 위해 체사레 보르자의 영역에 찾아왔을 때, 체사레 보르자는 그들을 죽여버리고 권력기반을 확고하게 다진다.
역사에는 가정이 존재할 수 없지만,
만약, 힘의 우위를 확보하기 전인, 로마냐 지방 점령 초기에 '이탈리아 반도의 평화'라는 대의를 내세우며 체사레 보르자가 오르시니파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면 오르시니파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오르시니파는 당연히 화해의 진의를 의심했을 것이며, 또한 체사레 보르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화해의 댓가를 요구했을 것이며, 화해의 댓가가 지불되더라도 화해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적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가 드라마틱한 계기 또는 여건의 변화없이 친구로 바뀌기는 어렵다.
체사레 보르자가 전하는 화해의 제스추어가 오르시니 가문에 의해 받아지게 된 것은, 명분과 대의가 아니라 체사레 보르자가 구축한 막강한 세력 즉 힘의 우위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현실공간에서 도덕적인 혁신가와 잔인한 양아치를 구분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힘의 우위를 확보한 후 내가 제시한 화해의 악수를 받아들인 적을 품고 화해의 약속을 지키면서 힘을 모아 가치를 창출한다면 '도덕적인 혁신가'인 것이고, 화해의 악수를 받아들이고 무장해제한 적을 무참하게 살해하면 '잔인한 양아치'가 되는 것이다.
물론, 힘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몽상가는 '도덕'과 '혁신'을 말할 자격을 얻지 못한다.
정치를 증오하더라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혁신가는 정치를 해야하며 정치가가 되어 혁신을 위한 자원(힘)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