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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CEO

주역과 CEO 52 - 중산간 重山艮

by pied_piper33 2024. 10. 20.
달릴 때가 있으면 멈출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쉬지않고 달리는 것이 소위 '정상'상태로 규정되어 있는 세상이니, 멈추는 순간, 루저(loser)로 간주되기 쉽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멈춰있는 나'를 타인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갑자기 내 주변이 지옥으로 변한다.
 
주역의 52번째 괘 중산간(重山艮)은 멈춤의 방법을 제시한다.
 
艮其趾
간기지
"발가락을 멈춰라"
 
사람은 오해받는 것을 고통스러워 하기 마련이다. 누가 뭐라고 비난하면 굳이 대응할 필요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이 꿈틀거리기 마련이다. 심장이 뛰고 화가 나는 것까지 제어할 수 있는 건, 평범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무척 힘들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몸부터 다스리자. 신발 속에서 발가락이 꿈틀대지 않도록 꽉 잡아두자.
 
艮其腓
간기비
"허벅지를 멈춰라"
 
艮其身
간기신
"몸을 멈춰라"
 
고통은 사람을 단련하지 않는다. 아프면 아플 수록 아픔에 더 민감해질 따름이다. 벌떡 일어나 나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어서 따지고 싶다.
 
충분히 이해한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바닥에 붙여 놓아야 한다.
 
艮其輔 言有序 悔亡
간기보 언유서 회망
"뺨을 멈춰라. 그리고 말에 순서를 두어야 후회가 없다"
 
용케 몸을 멈추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입을 통제할 차례다. 한박자 쉬고 어떤 말을 먼저하고 어떤 말을 나중에 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不見其人 无咎
불견기인 무구
"사람들을 보지 마라. 그래야 허물이 없다"
 
세이렌이 노래를 부르는 바다를 지날 때는 오디세우스처럼 돛대에 몸을 묶고 선원들처럼 밀랍으로 귀를 봉해야 한다. 멈추어 있을 때는, 온전히 나 자신을 돌보는게 현명하다.
 
주역이 말하는 '멈춤의 시간'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시간이 아니다. 멈추어야 할 때 또는 멈출 수 밖에 없을 때는 그냥 멈추고 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