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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CEO

주역과 CEO 47 - 택수곤 澤水困

by pied_piper33 2024. 10. 20.
공자가 진나라에 머물 때, 식량이 떨어지고 여러 제자들이 병들어 눕게 되었다. 화가 난 자로가 공자에게 따지듯 묻는다.
"(선생님을 가르침을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러한 가난을 겪는게 과연 맞는건가요?"
 
공자는 대답한다.
"군자는 단단하게 궁핍한 시간을 보내지만(군자고궁, 君子固窮), 소인은 궁핍해지면 함부로 행한다"
 
공자는 '군자'이니까 궁핍함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누구에게나 닥치는 위기를 '군자'로서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단단하게 위기의 시간을 지나는 군자(固窮) vs. 물이 넘치듯 함부로 행동하는 소인(窮斯濫)
 
주역의 47번째 괘 곤(困)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의미한다.
 
无咎 有言不信
무구 유언불신
"(위기를 겪는 자체는) 허물이 아니다. 하지만,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난처한 상황에 처했는데, 해명하려는 내 말을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는다. 논어에서 공자가 묘사했듯이, 소인이 물이 넘치듯 함부로 행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답답한 상황이다. 무슨 말이든 떠들고 뭐라도 저지르고 싶어진다.
 
이 타이밍에서 맹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言不必信 行不必果
언불필신 행불필신
"말이 반드시 믿음을 얻을 필요가 없으며 행동이 반드시 성과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모든게 꽉 막혀서 옴짝달싹 못하는 위기의 상황에서 굳이 내 말을 타인이 믿어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노력해도 결과가 안나올 수 있으니 노력의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맹자는 조언한다.
 
다만,
 
惟義所在
유의소재
"오로지, '의로운' 곳에 서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로움'이라는 가치는 붙잡아야 하며, 행여 옳지 못한 쪽에 몸을 두면 안된다.
 
철저한 실용 처세서인 '주역'은 잘 풀리는 행운 보다는 꼬이는 '위기'를 더 많이 이야기한다. 이게 가장 현실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주역으로 돌아가자.
 
險以說
험이열
"고통스럽지만 기뻐한다"
 
이건 주역답지 않은 이상적인 설명으로 보인다. 왕부지는 이 구절에 대해서 내 운명을 알고 있다면 하늘의 변화를 즐길 수 있다(지명즉락천 知命則樂天)이라고 해석한다.
 
종합해보자.
 
주역은 고통의 시간에 대해서 당신이 굳이 큰 잘못을 하지 않더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긍정한다. 또, 그 고통의 시간에는 뭘해도 잘 안풀릴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다만, 그 고통의 시간을 공자가 말하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단단하게 버텨내기 위해서는 내게 닥친 운명을 인정하고 변화를 기뻐하는 성숙함이 필요할 따름이다.
 
물론, 그 성숙함을 미처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고통의 시간'을 맞이했다면, 이 참에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금 겪는 고통의 시간이 인생의 마지막 고통은 아닐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