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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즐거움

싸움의 방법 -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by pied_piper33 2024. 10. 18.
쟝 보드리야르는 책 '시뮬라시옹'을 통해서, 자본을 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행동과 자본에 대해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는 행동이, 사실상 동일한 것이며 심지어 자본이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은 자본을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합리성의 이름으로 그에 대항하여 싸워주는 것이다"
 
"또는 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도덕성의 이름으로 자본에 대항하여 싸워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배중률을 부정하는 듯한 보드리야르의 이 주장은 어떤 의미일까..
 
보드리야르의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자본 자신은 정작 그가 지배하는 사회와 결코 계약에 의해 맺어져 있지 않다.자본은 도덕적이고 경제적인 합리성에 따라 고발해야 하는 스캔들이 아니다"
 
합리성 또는 도덕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자본'이라는 존재에 대해, 합리성과 도덕의 잣대로 비난하고, 자본의 운동 결과로 발생된 스캔들에 대해 도덕의 파탄으로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마치 자본에게 도덕과 합리성이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시뮬라시옹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여기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소위 '좌파'의 자본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오히려 자본이 강화되는데 기여했을 뿐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가치를 일축한다.
 
"자본이 이 사회계약의 환상에 따라 행동하기를, 조만간 행동할 것으로 바라면서, 자본에 이 등가의 거울을 드리우는 것은 바로 좌익이다"
 
설국 열차의 주인공이 희생을 무릎쓰고 반란을 일으켜 앞칸으로 전진했던 그 영웅적인 행위는 알고보니 그 기차라는 불평등한 세계를 전복시키는 혁명이기는 커녕, 오히려 개체수를 조절하여 설국열차라는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였을 따름이다.
 
도덕 그리고 합리성과는 애초부터 관련이 없었던 존재를 무너뜨리기 위한 무기가 '도덕 그리고 합리성'이어서는 곤란하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복싱 경기장에 칼을 들고 올라간 범죄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1. 이 싸움이 더이상 복싱경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2. 방패로 나를 보호하면서
3. 더 강한 무기로 범죄자를 제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