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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단상

직원들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

by pied_piper33 2024. 10. 16.
케인즈는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이 논리적인 분석과 추론의 결과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꽤 많은 상황에서 (아니 대부분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야성적 충동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야성적 충동'은 영어 'animal spirits'를 번역한 것으로 동물적인 직관이나 감정적인 충동의 의미를 담고있다.
여기서 착안하여 이름을 붙인 노벨상 수상자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의 책 '야성적 충동'에서는 경제 주체들을 비합리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원리인 이 animal spirits를
1. 자신감에 대한 믿음
2. 공정성에 대한 강박
3. 부패 및 부정에 대한 취약성
4. 화폐 착각
5. 정보와 스토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계
..의 5가지로 세부적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번 글에서는 5번째 '정보와 스토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애커로프와 쉴러는 '이야기(story)'에 대해서 분석된 정보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것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가 되어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즉, 부정확한 사실과 충실하지 않은 정보라 하더라도 '이야기'의 형태로 가공되고 유통되는 순간, 이야기는 사실이 되어버리고 경제주체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업 경영에 적용을 해본다면 이렇게 다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이 경영하는 기업 또는 기업조직의 구성원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이야기'가 조직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으며, 결국 성과로 귀결될 것이다."
이야기의 종류가 매우 다양할 것 같지만, 여러 회사들을 가만히 관찰하고 들어보면 대략 세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시장'이 컨텐츠인 이야기이다.
시장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으며, 고객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그리고 시장과 고객과 관련하여 어떤 실패와 성공을 했으며, 어떤 것을 새로 배우게 되었다..는 주제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화가 진행될 수록, 시장과 고객에 대한 정보의 양과 질이 풍성해지는 수순을 밟게 되기 쉽다.
두번째는 '리더'가 컨텐츠인 이야기이다.
너무나 훌륭한 리더를 모시고 있어서 영광스럽다..는 방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나 (물론 현실적으로는 보고를 하다가 모욕을 당했다 또는 용케 피했다는 은밀한 가십이 대종을 이루기 쉽다) 이러한 현상은, 조직 구성원의 승진과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장과 고객'이 아니라, 리더에게 드리는 보고에 대한 리더의 반응 또는 보고자에 대한 리더의 평가라는 걸 주로 의미한다.
대화가 진행될 수록, 시장과 고객으로부터는 멀어지고 리더의 심기를 맞추는 능력이 조직 구성원에게 배양되는 방식으로 조직 구성원이 훈련되게 된다.
세번째는 '시장'과 '리더' 이외의 컨텐츠로 구성되는 이야기이다.
이 경우, 중역과 관리자들은 주로 '골프'를,
역량이 있는 실무자 끼리는 '이직'과 '급여'를
역량이 부족한 실무자 끼리는 '동호회'를 주제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이 관찰된다.
시간이 흘러갈 수록, 시장과 고객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여기에 더하여 조직 구성원에 대한 리더의 불만도 쌓여가게 된다.
투자자 또는 구직자의 입장에서 최악은, 두번째 즉 '리더'가 주요 컨텐츠가 되어 구성원 사이에서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조직이다.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장기적인 시행착오를 통해 리더의 심기를 맞추는 초근시안적인 모습으로 망가져 있기 쉽고, 시장에 도전하고 고객에게 가치를 창출하고 싶은 야성적인 인재는 단기적으로는 존재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모두 사라져 있는 상태로 조직 구조도 변해있을 확률이 높다.
다만, '리더'에게 맞추어온 실력은 투자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미디어에게 좋은 기사꺼리를 제공하는데에 탁월할 것이기 때문에 몇달의 Due Diligence와 업계의 평판조회 수준으로는 속기 쉽다.
세번째인 '일'에 관심이 없는 조직에는 유능한 인재와 무능한 인재가 모두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낮은 업무 강도와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엤는 스트레스라는 환경이 제공하는 달콤함에 유능한 인재의 칼날이 무뎌졌을 수는 있으나, 이는 탁월한 리더가 신뢰할 수 있는 경영으로 확신을 심어준다면 본능을 다시 일으킬 수 있으며,
무능한 인재 역시도, 복지부동이 가능한 환경 속에서 '저항'의 역량을 강화시킬 기회를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산전수전 겪은 노련한 리더의 관점에서는 '혁신'을 거부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움직임이 수없이 발견되지만, 그 거부가 체계적이거나 정교하지 못하고 집요하지 못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즉, 혁신저항 극복의 난이도가 높지 않다.
물론, 첫번째, 조직 구성원들끼리의 수평적 대화에서 '시장'과 '고객'이 주요 주제인 곳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기업 또는 조직을 만들어낸 리더라면 시장에서의 성과 이전에 그 자체로 리더로의 역량을 입증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리더의 변화없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곳에서 두번째 또는 세번째의 '이야기 현상'이 발생되고 있다면, 리더 스스로 자신이 그 자리에 왜 계속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실존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만약, 조직을 새로 맡게 된 리더가 관찰해보니 조직의 이야기 현상이 첫번째라면 이제 남은 인생에 로또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이미 로또를 맞은 것이다.
두번째라면 손절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고, 세번째라면 리더의 역량에 의해 뭐라도 바뀔 여지가 있으니, 도전의식을 가져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