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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현실 비즈니스

논어 - 가르칠 수 있는 사람1

by pied_piper33 2025. 2. 9.

내가 먼저 배우고 깨달은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해서 돕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로 시작한 가르침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유쾌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도 많다. 오히려 가르쳐주려는 선의의 접근이 간섭과 지적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쉽다. 듣는 사람에게는 '귀찮음'이 되고 도우려는 사람에게는 '상처'로 남는다. 

 

공자의 시대에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논어 술이편에서 공자는 아무에게나 가르침을 주지 않으리라고 선언한다. 

"배우려는 열의를 보이지 않으면 일깨우지 않고, 스스로 애쓰지 않으면 끄집어내주지 않는다 (不憤不啓 不悱不發)"

 

그렇다면, 열의와 애씀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육포 한꾸러미 이상을 들고 온 사람에게 나는 가르침을 거절하지 않는다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왕을 만날 때는 보석을, 대부에게는 양(羊), 사(士)는 꿩, 서인(庶人)은 거위, 공상 (工商)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닭을 선물하는게 당시의 기준이었다고 하니, 말린 고기 한꾸러미는 매우 저렴한 선물이었던 듯 하다. 

 

이 정도의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가르치지 않겠다고 공자는 선을 긋는다. 이는 등가교환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보는게 맞다. 내가 전해줄 지식의 가치가 아무리 크더라도 작은 성의를 통해 배우려는 예의를 갖춘다면 가르친다는 말이기도 하다. 반대로, 나중에 아무리 큰 보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들어보고 배울만 하면 배우겠다'고 접근하는 사람이라면 거절하는게 지혜롭다는 통찰이기도 하다. 

 

공짜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빈수레가 적당하다. 충분히 요란하니, 당장은 그게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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