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공간에서 해결해야하는 과제 또는 문제상황에 부닥치게 될 때, 그 과제 또는 문제상황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❶ '경험'을 사용하는 방식
자신의 과거 경험의 틀에 '새로운 과제'를 끼워맞추어서 '이것은 마치 내가 과거에 경험한 000와 같은 과제이다'라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❷ '지식'의 사용하는 방식
선진 방법론 또는 유명한 학자의 이론의 틀에 '새로운 과제'를 끼워맞춘다. '000이론에 비추어 이 문제를 구조화하면 ***한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이해한다.
❸ '논리'를 사용하는 방식..
인과관계를 찾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현상이 만들어졌고 움직이는지를 분석한다.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뜯어보니 이 문제는 @@@로 재구성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경험의 구조로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일을 시킬 수 없다.
무슨 정보와 지식을 주더라도 '과거'로 회귀시켜 버린다.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지식의 구조로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다. 이론의 뒤에 숨어버리고 현실에서 발생하는 온갖 불확실성과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능동적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논리의 구조로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과는 토론이 가능하고, 설사 문제를 잘못 인식하여 대안에 오류가 있다하더라도 대화를 통해 문제점을 찾고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모두 인과관계로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심각한 이슈가 발생했으나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희생양을 만들수도 없는 노릇이다.
논리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은 모호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들은 경험과 지식을 의존하는 유형보다는 훨씬 낫지만 여전히 통찰력이라는 관점에서는 한계를 노출한다.
논리적으로 뜯어보는 방식이 경험이나 지식을 의존하는 방식보다는 효과적이지만, 인식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보완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이 한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항상 (공의) 표면을 맴돌 뿐, 공의 중심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표면을 떠나서 깊은 곳에 이를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는 '고뇌에 눌려 무거워져야 한다'고 솔루션을 제시한다.
"인간이 더 나은 의식을 자신의 내부에서 활성화하려면 그는 고통을 느끼고 고뇌해야 하며 실패를 겪어야 한다. 배에 무게가 나가는 밸러스트(Ballast)를 적재하지 않으면 배가 깊이에 이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쇼펜하우어의 이 솔루션은,
일의 과정과 성패에 대해 고통을 느끼고 고뇌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묵직한 책임감이 경험과 지식 그리고 논리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어준다는 방식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대급부가 없는 상황에서의 일방적인 '고통과 고뇌'의 부여는 학대에 다름 아니며, 바람직하지 않을 뿐아니라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어디에 어떻게 밸러스트(Bellast)를 설치해야 할 것인가?
기업가 정신이 밸러스트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비즈니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장인, 그 애처로운 짐승 (3) | 2024.11.03 |
---|---|
실천은 실패가 없다. (0) | 2024.10.31 |
대중은 실제로 무엇을 욕망하는가? (0) | 2024.10.31 |
거울 단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엘리트들 (0) | 2024.10.31 |
나는 누구인가? (0) | 2024.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