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사람들은 정반대로 생각해왔다.
대부분 사람들이 상상하는 세상은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목적론적 세상이었다. 하지만, 사실 세상은 시작론적(ekinological)이다. 현재 우리 우주가 슬쩍슬쩍 보여주는 모든 신비와 미스터리의 열쇠는 우주의 시작에 있다.
그 시절 그때의 결과로 지금 우리가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큰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관찰하고 원인과 결과,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 목적과 목표 따위를 따져가며 설명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이런 개념들은 현실의 근본 구성요소가 아니다."
- 션 캐럴, '빅픽처'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책의 이 구절을 지나면서, '인생'이라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이해하는 방법 역시도, 션 캐럴이 우주를 이해하는 방법과 굳이 다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주가 특별한 목적없이, 빅뱅 이후 내던져진 물질의 운동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지속되어 온 것처럼 우리의 인생 역시도, 목적 보다는 시작점의 특성과 운동량으로 설명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듯 한다.
물론, 이런 시작론적인 인생관은.. 무기력한 '운명론'에 빠지게 만들 위험이 있긴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에 신 또는 타자의 '의도'를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원망'이나 '비관'을 떨쳐 버리고.. 보다 주체적으로 인생을 꾸려나갈 힘을 줄 수 있는 장점도 따져보면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이러한 장단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시작론적 우주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인간의 삶 역시도 시작론적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으니,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딱히 대안이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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