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빈배가 흘러와서 부딛힌다면 굳이 화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배에 누군가가 타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에게 '운전 똑바로 하라'고 화를 내기 마련이다.
장자 산목편(山木)에 나오는 얘기다.
여기서 장자는 배가 충돌한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왜 어떤 상황에서는 화를 내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화를 내지 않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흘러다니는 배가 '나'라고 해보자.
'나'라는 배가 비워져 있다면 어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세상은 굳이 나에게 화를 내지 않고, 나를 해치려 들지 않는다는게 장자의 설명이다.
강신주는 이 글에서 화를 낸 사람 쪽에 촛점을 맞춘다.
배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다면 굳이 화낼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즉, 내 '소유'를 타인이 타고 있는 배가 손상시키고 방해했으니 분노가 발생했다.
장자와 강신주를 종합해보면, 불화는 아래의 두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 발생한다.
❶ 내 배에 누군가를 태우고 있다
❷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타고 있는 배와 부딛힌다
그렇다면, 바람따라 흘러가는 내 배에 사람을 태우고 있지 않던가,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배와 부딛히지 않는다면 불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응용해보자.
내가 흘러다니는 배라면, '사람'을 태우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사람은 '타인과 충돌하는 무언가를 욕망하는 자아'를 상징하는 메타포일 수 있
다.
나를 비우면서 살아간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할 수 있다.
또,
내가 배를 타고 있을 경우, 내가 타고 있는 '배'에 대한 소유권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충돌 사고가 나더라도 굳이 화가 나지 않는다.
화를 전혀 내지 않고 사는 삶을 모두가 추구해야하는 이상적인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화'라는 극히 소모적이면서도 자기 파괴적인 자원을 꼭 필요한 순간에만 투입하고, 무의미한 '화'에 말려들어가서 삶의 평온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적인 지혜는 필요해보인다.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해야하지만 약간의 노력만으로 그 경지에 바로 도달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배타적인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단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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