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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즐거움

시작론적 세계 - 션 캐럴 '빅픽처'

by pied_piper33 2024. 10. 31.
"그동안 사람들은 정반대로 생각해왔다.
 
대부분 사람들이 상상하는 세상은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목적론적 세상이었다. 하지만, 사실 세상은 시작론적(ekinological)이다. 현재 우리 우주가 슬쩍슬쩍 보여주는 모든 신비와 미스터리의 열쇠는 우주의 시작에 있다.
 
그 시절 그때의 결과로 지금 우리가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큰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관찰하고 원인과 결과,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 목적과 목표 따위를 따져가며 설명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이런 개념들은 현실의 근본 구성요소가 아니다."

- 션 캐럴, '빅픽처'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책의 이 구절을 지나면서, '인생'이라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이해하는 방법 역시도, 션 캐럴이 우주를 이해하는 방법과 굳이 다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주가 특별한 목적없이, 빅뱅 이후 내던져진 물질의 운동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지속되어 온 것처럼 우리의 인생 역시도, 목적 보다는 시작점의 특성과 운동량으로 설명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듯 한다.

 

물론, 이런 시작론적인 인생관은.. 무기력한 '운명론'에 빠지게 만들 위험이 있긴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에 신 또는 타자의 '의도'를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원망'이나 '비관'을 떨쳐 버리고.. 보다 주체적으로 인생을 꾸려나갈 힘을 줄 수 있는 장점도 따져보면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이러한 장단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시작론적 우주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인간의 삶 역시도 시작론적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으니,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딱히 대안이 없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