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과 연못이 연결되어 있다. 한쪽 연못에 물이 빠지면 옆 연못의 물이 흘러들어와서 채워주고, 넘치면 서로 나눈다.
주역은 이 모습에 '기쁨(兌 태)'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화태 길
和兌 吉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기뻐한다. 행운이 생긴다"
부태 회망
孚兌 悔亡
"서로 믿으면서 기뻐한다. 후회할 일이 없다"
래태 흉
來兌 凶
"선물 받으면서 기뻐한다. 불행이 생긴다"
상태미녕
商兌未寧
"계산하면서 기뻐한다. 평안하지 못하다"
부우박 유려
孚于剝 有厲
"범위를 좁히는 것을 믿는다. 근심이 있다"
주역의 저자는 마음을 나누고 믿으면서 발생하는 기쁨을 긍정적인 기쁨으로,
선물 받으면서, 내가 더 누리기 위해 계산하면서, 그리고 나와 다른 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기쁨을 부정적인 기쁨으로 구분한다.
긍정적인 기쁨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찾아오고 지난 잘못에 대해서도 후회가 없으나, 부정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은 평안하지 못하고 근심하고 더 나쁜 일이 생긴다고 경고한다.
여기서 부우박(孚于剝)에 대한 해석이 학자마다 많이 다르다.
김용옥은 '음이 양을 등쳐먹는다', 왕부지는 '재난 속에서의 믿는다', 정이천은 '깎으려는 것을 믿다', 김인환은 '위험에 직면하여 곤란을 회피하지 않는다', 왕필은 '문제를 악화시키는 사람에 대한 신뢰'라고 서로 완전히 다른 번역을 내놓았다. 주역이라는 텍스트에 대해서 압도적인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는 대가가 존재할 수 없으며, 읽는 사람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Sincerity toward disintegrating influence"라는 빌헬름의 해석에 손을 들어주려고 한다.
한자 우(于)는 큰 칼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박(于剝)은 큰 칼을 들어서 무언가를 잘라내는 모습을 의미한다. 앞서서 중택태 괘는 연못과 연못이 연결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나의 범위를 넓히고 우리의 범위를 넓히면서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때 삶이라는걸 조금은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다'는 의미의 우분투(ubuntu) 사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구분하고, 우리와 남을 나누고, 생각의 편린 하나가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는 방식으로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남이 이상한 만큼 나도 이상하고, 내가 진실하려는 것처럼 타인에게도 그런 좋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연결의 가치'가 빠져 있다면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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