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의 책에서 경제학자가 살면서 덕을 쌓으면 다음 생에는 물리학자로 태어날 수 있다는 우스개소리를 본 기억이 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물리학의 문법을 사용해서 사회현상을 분석하지만, 다루는 대상이 천길 물 속보다 더 알기 어려운 사람들의 욕망이기에 실험 물리학적인 검증에는 이르기 어렵다는 한계를 설명하는 말이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경제학은 물리학의 발전에 조금 더 편승해서.. 물리학의 성과를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일단, 경제학의 수요 공급곡선이 그려져 있는 평면은 실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뉴튼의 고전물리학적인 유클리드 평면이다. 중력에 의해 공간에 곡률이 생기고, 시간의 지연이 발생하는 것을 담지 못한다.
법보다 주먹이 더 효과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사회과학의 세계 또는 인간 세상에서는 '곡률'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또, 원자 속 전자에 대해,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고, 측정하기 전까지는 이중슬릿 실험에서 광자가 어느 구멍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으며 두 구멍을 동시에 통과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경제학에서 '전자'라고 할 수 있는 개인에 대해 과연 경제학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
양자 물리학을 적용해본다면, 개인은 합리성과 불합리성을 중첩적으로 동시에 갖고 있으며, 선택(측정)의 순간에 어떤 측면이 발현되는지도 그때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응용해보자.
실수요자와 투기수요자가 중첩되어 존재하고, 정책과 루머에 의해 심하게 뒤틀린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의 수요곡선은 과연 우하향하는가? 언제나 우하향 하는가?
내가 과연 내세에 물리학도로 태어날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차라리 시인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비즈니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진 유리창 (1) | 2024.10.28 |
---|---|
리더에게 필요한 Staff (0) | 2024.10.25 |
말할 필요가 없는 것 (1) | 2024.10.22 |
이름의 폭력 - 唯名論, nominalism (0) | 2024.10.22 |
수직적 소통의 유형 (1) | 2024.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