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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즐거움

왜 고통스러운가?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by pied_piper33 2024. 10. 23.
출근 준비로 바빴던 어느 아침이었다. 아내가 묻는다
 
"세계는 왜 생긴거야?"
 
왜 생겼을까.. 그런데 세계는 뭐지?
 
사실 삶이라는게 왜 고통스러운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삶이 펼쳐지는 무대인 세계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부터 해야한다. 그러고 보니 꽤 괜찮은 질문이다. (왜 생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인지'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세계는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선언하면서 시작한다.
 
표상이라..? 독일어로는 Vorstellung 영어로는 Representation
 
그 선언의 내용은 이렇다.
 
물 속에 사는 물고기는 모든 것을 물을 통해 인식한다. 물 밖에도 세상이 존재하고 물 밖의 온갖 변화가 물 속 세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물고기에게는 물이 세상 전부일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어떤가?
 
사람은 스스로 이성을 보유하고 과학을 통해 세계를 알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시간, 공간, 인과관계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단을 통해 제한적으로 세계를 인식할 따름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수단을 충분근거율이라고 명명한다. 즉, 사람은 충분근거율에 의지해서 파악된 세계만을 알 수 밖에 없다. 표상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이렇게 제한적인 수단을 통해 인식된 세계의 이미지를 의미한다.
 
다시 물고기로 돌아가 보자.
 
태풍이 불어서 파도가 거세게 일고 물 속 세상도 뒤집혀 버렸다. 그럼에도 물고기가 태풍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표상이 전부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태풍은 불어닥치기 마련이다. 표상으로 인식된 세계를 실질적 움직이는 그 이면의 힘은 끊임없이 세계를 흔들어댄다. 물 속의 물고기는 영문도 모른채 흔들리고 몸부림치고 도망치면서 옆에 있는 물고기와 해초와 바위와 충돌한다.
 
이 힘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의 의지이다. 그 의지는 끊임없이 욕망하고 확장하면서 자기자신과 주변의 존재를 괴롭힌다.
 
아무리 나이스하게 세상을 설명한다 하더라도 모든 존재 또는 존재자가 보유한 그 '의지'를 간과하면 안된다.
 
머리는 세계를 표상으로 이해하지만 몸은 의지로 흔들리고 휘청거리는 세계를 느낀다. 의지를 표상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몸으로 고통을 느낄 따름이다.
 
세계는 이렇게 '의지와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왜 생겼는지 묻는 건 무의미하다. 표상만으로 충분한 설명과 이해가 불가능하니 말이다. 설명과 이해가 안되니 당연히 문제의 해결도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고통을 꾸역꾸역 감내하면서 살라는건가.. 아무 것도 욕망하지 말고 식물처럼 살라는건가..
 
이 지점에서부터 니체는 더이상 쇼펜하우어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쇼펜하우어 읽기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니체라는 세계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