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자와 기업경영

노자와 기업경영 66 - 처전이민불해 處前而民不害

by pied_piper33 2024. 10. 19.
 
사람 또는 조직에 대한 평가지표(KPI)는 구성원의 행동양식을 규정한다.
 
행동이라고 하니 거창하다. 실제로는 KPI에 따라 수많은 꼼수가 발생하는데 그 꼼수가 기업이 생산하는 가치가 증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되어야 잘 만들어진 KPI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장애발생 횟수'라는 KPI가 있을 경우, 해당 부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애발생 횟수를 최소화시키는 노력을 한다.
 
긍정적으로는 장애의 원인을 제거하는 근본적인 노력을 할 것이고, 부정적으로는 발생된 장애를 부서 밖으로 알리지 않거나 아예 부서 내에서도 보고 받지 않는 꼼수를 쓰게 된다(도덕적인 비난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없다). KPI가 없었어도 그 원인을 없애는 근본적인 노력은 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KPI가 생긴 이후에는 보고하지 않고 보고받지 않는 꼼수가 늘어날 따름이다.
 
문제점과 이슈 그리고 그것들이 누적된 결과로 발생되는 장애를 보고하지 않고 보고 받지 않는 문화는 아주 짧은 기간내에 조직 전반의 지식축적과 문제 해결능력을 와해시켜버리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회사 생활을 어느 정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장애발생 횟수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KPI가 여전히 채택되어왔고 앞으로도 꾸준히 활용될 것이다.
 
장애발생 횟수로 대표되는 인기있는 KPI들은 측정하기 쉽고 설명하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관리'하기 쉽기 때문에 사용될 따름이다.
 
그 쉬운 선택을 지속하는 동안 세상에는 챗GPT가 등장했고 내일 또 어떤 괴물이 나타날지 모른다. 이렇게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해감에도 '관리'는 변화의 무풍지대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
 
'관리'는 언제나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힘이 세다. 그리고 예외없이 혁신의 제약조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기업의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비효율의 원인을 추적하다보면 그 끝에는 KPI가 있고 그 이면에는 '관리의 편의성'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영자/주주/회사가 원하는 가치와 '관리의 편의성'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가 결과를 정당화하는 탄탄한 논리와 평가 담당자를 위한 보호장치가 있을 따름이다.
 
이 문제를 들여다볼 만큼 한가한 경영자는 없다. 사실, 지금까지는 없어도 문제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세상이 바뀌어 어제의 경쟁력이 오늘의 생존을 담보하지 못한다.
 
노자는 백성의 위에 있으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야 하고 백성의 앞에 있으나 해롭지 않아야 한다(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고 가르친다.
 
기업의 KPI를 다루는 '관리'부서는 자신이 무겁지 않은지 그리고 해롭지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좀 먹는 수많은 비효율들을 제거하기 위해 CMO, CTO, CIO, CHRO 조직을 괴롭혀 보았자 별거 없다.
음지에서 실질적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관리'라는 괴물이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