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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기업경영

노자와 기업경영 59 - 심근고저 深根固柢

by pied_piper33 2024. 10. 19.
 
19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를 보면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광경을 접하게 된다.
 
적군의 총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수십명의 병사가 가로 일렬로 선채로 총을 쏘면서 전진한다. 은폐나 엄폐없이 일렬로 선 병사들이 그냥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니, 적군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사격 실력이 형편없어도 하늘을 향해 총을 쏘지 않는 한 명중시키기 어렵지 않다.
 
이런 전투 형태가 생기고 꽤 오래 지속된 이유는 재장전이 불편한 머스켓 소총의 특성과 사거리 그리고 병사들에 대한 동기부여의 어려움이었다.
 
귀족출신의 장교들과는 달리, 하층민으로 구성된 병사들은 전투에 참여해야할 이유도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이유도 딱히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병사들을 전장으로부터 이탈하지 않도록 묶어두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고하면서 전투를 수행하기 보다는 매우 엄한 군율에 의해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대형을 유지하고 전진하는 훈련이 필요했으며, 그 훈련의 결과 로보트처럼 전진하고, 앞줄이 쓰러지면 뒷줄이 전진하는 전투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강한 군기에 의한 대형 유지, 앞줄과 뒷줄의 빠른 교체, 재장전 속도 및 사격 정확성을 갖추면 승리의 확률을 높일 수 있었던 이 '전열보병' 전술은 '기관총'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즉, 분당 수백발을 쏘아대는 기관총 앞에서는 '전열보병' 방식으로 전진하는 병사는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며, 당연히 '전열보병'을 유지시켰던 여러 타당했던 근거들도 의미를 잃게 된다.
 
기술의 진보는 전술의 변경을 요구한다. 하지만, 기업 조직 내에서 상층부를 구성하는 경험 많은 리더들은 새로운 기술이 세상에 나타나기 이전의 용도폐기된 전술에 대한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기술의 진보를 받아들이더라도, 과거 '전술'의 관점에서 신기술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쉽다.
 
기관총 앞에서는 '전열보병' 전술을 폐기하고 '참호'를 깊게 파야 했던 것처럼, 리더들은 '새로운 기술 진보'를 접할 때마다 자신을 그 위치에 까지 오도록 만들었던 성공 공식 중에 어떤 것을 폐기해야 할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리더는 자신의 과거 전술을 폐기하고, 젊은 세대에게 폐기된 빈자리를 메꿀 전술을 새로 만들도록 위임해야 한다.
 
문제는 '전열보병' 방식의 기업 운영 '전술'을 성과 창출을 위한 필요악으로 신봉하는 리더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뿌리를 깊게 하고 바탕을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深根固柢)고 가르친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새로운 기술의 이해와 활용은 시간이 날 때 잠깐 참고하면 되는 유행이 아니라, 생존과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뿌리이자 바탕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기관총이 등장하고 탱크가 굉음을 내면서 전진하는 전투 현장에서 엄한 규율을 기반으로 대형의 유지를 강요하는 것은 그냥 병사를 대량으로 죽이겠다는 아집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기술 발전과 세상의 변화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리더에 대해서 취향의 문제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기술 발전을 알지 못하고 활용할 의지가 없는 리더와 일하는 구성원은 창의성과 자율성을 활용하여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없고 결국 커리어를 망치게 된다.
 
그런 리더 밑에서는 사람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