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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기업경영

노자와 기업경영 38 - 상덕부덕 上德不德

by pied_piper33 2024. 10. 19.
노자의 도덕경은 '도(道 본질 principle)'를 다룬 도편 1장~37장과 '덕(德 작용 function)'을 다룬 덕편 38~81장으로 구성된다.
 
도편은 '도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항상 도인 것은 아니다'라는 부분 부정으로 시작한다. 즉, 세상이 움직이는 또는 인간이 살아가는 도(道)의 실체를 인정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고정관념이나 일반 상식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려가기 보다는 차근히 본질을 들여다 보라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덕편은 부분 부정이 아니라 완전 부정으로 시작한다. 최고의 덕은 덕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이다.
 
대부분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법을 의식하지 않고 살지만, 법이 금지하는 행동을 굳이 하지 않든다. 만약, 어떤 공동체가 사사건건 법과 규정을 들먹이며 협박하지 않으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고 해보자. 그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 공동체 속의 삶도 행복할 가능성이 낮다.
 
법과 규정은 필요하지만, 법과 규정이 추구하는 이상향은 굳이 법과 규정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합리적이면서도 도덕적인 삶이 지속되는 그런 상태일 것이다.
 
노자는 ‘도, 덕, 인, 의’가 모두 사라져 버리면 그 폐허에 ‘예(禮)’가 남는다고 설명한다.
 
기업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일하는 곳이므로, 구성원 사이에서 다툼이 생겨날 수 있다. 다툼의 원인이 되는 갈등과 오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존경하고 있었다면 마음을 나누는 말 몇마디로 예방되었을 것들이 대부분인 것을 알게 된다.
 
기업문화라는 것은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뭔가 멋지고 발랄한 프로그램일 수도 있으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 구성원들 간에 신뢰와 존경을 형성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업 구성원 사이에서 직장 예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절’에 대한 절차를 정비하고 처벌을 강화하기 이전에, 기업 조직 내에서 어떤 원칙이 무너졌는지 또는 어떤 원칙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었는지 점검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禮)에 대한 강조와 번거로운 절차 없이, 예(禮)가 지켜질 수 있는 분위기가 유지된다면, 기업은 훨씬 더 일하기 좋은 공간이 될 수 있다. 예(禮)는 목적도 과정도 수단도 아니다. 기업문화의 결과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덕(德)이 무너지고 인(仁)이 무너지고 의(義)까지 무너지고 난 이후에 나타나는 예(禮)가 강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합리적인 이유없이 강요되는 위계질서, 동의와 설득의 과정이 없는 일방적인 요구 그리고 이를 통해 구축된 권리와 지위를 누리고 있는 누군가를 우리가 '꼰대'라고 부르며 불편해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그래서 노자는 최상의 덕(德)은 덕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라고 말한다.
 
"故
 
失道而後德 (실도이후덕)
失德而後仁 (실덕이후인)
失仁而後義 (실인이후의)
失義而後禮 (실의이후례)
 
 
禮者 忠信之薄 (례자 충신지박)
而亂之首 (이란지수)
前識者 道之華(전식자 도지화)
而愚之始 (이우지시)
 
“따라서,
도를 잃은 후에 덕이 나타나며
덕을 잃은 후에 인이 나타나며
인을 잃은 후에 의가 나타나며
의를 잃은 후에 예가 나타난다.
 
무릇,
예의라는 것은 진정한 신뢰의 박약을 의미하며 혼란의 머리가 된다.
예의를 분별한다는 것은 도를 꾸미는 것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