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욕(欲)은 축문을 넣은 제기 위에 신령이 나타난 것을 묘사한 곡(谷)에 사람이 입을 크게 벌리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모습을 담은 바랄 흠(欠)이 합쳐진 글자이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신령'을 눈으로 본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따름이다.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 역시도 '신령'을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욕(欲)은 볼 수 없는 것 그래서 볼 필요 없는 것을 보려고 하는 무의미한 바램을 의미한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려고 하는 시도는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하는 힘을 약화시키기 마련이다.
노자는 이 욕(欲)을 사람들로 하여금 도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또는 도에서부터 멀어지게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욕(欲)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노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명지박(無名之樸)이다.
박(樸)은 톱으로 잘라서 넘어져 있는 통나무이므로 무명지박(無名之樸)은 '이름없는 통나무'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금속을 가공하는 기술이 발달하고 또 플라스틱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나무는 집을 짓고 도구를 만드는 가장 유용한 재료였을 것이다. 이름이 붙어있지 않은 통나무는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은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노자는 그 무한한 가능성(樸) 앞에 무명(無名)을 붙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었던 퍼거슨의 책 '리딩'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나는 육체적, 정신적 활력을 항상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선수들이 피곤해 보여도 좀처럼 '지쳐 보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선수들은 실제로 피곤하다고 느끼게 된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야기했다"
"자넨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강해."
피곤해 보인다는 한마디를 통해 선수의 현재 상태와 미래 가능성을 닫아버릴 위험이 있다. 리더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가능성은 일하는 사람 즉 기업 구성원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리더에게는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부정적인 힘이 주어져 있다. 리더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은 섣부른 말 한마디로 미래를 규정해버리고 가능성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노자는 욕(欲)을 제어하기 위한 대안으로 가능성을 의미하는 박(樸) 앞에 무명(無名)을 붙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욕(欲)은 치명적이다. 알 수 없는 것을 알려하고 모르는 것을 온갖 현학적인 논리를 동원하여 아는 것으로 규정하는 과정을 통해 불확실성이 줄어든 듯한 착각을 즐기다 보면,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할 타이밍을 놓치고 전진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잃어버리기 쉽다.
지금 알 수 없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시장 앞에서 나 자신 그리고 함께 일하는 구성원이 만들어 갈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신뢰해야 한다.
無名之樸
무명지박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통나무'으로 상징되는 가능성에 대한 겸손한 믿음, 이것이 노자 도덕경 중 도편의 결론인 37장에서 말하는 '도'의 실체인 것이다. '도'는 이렇게 '이름없음'으로 시작해서(無名 天地之始) '이름없음'으로 마무리(無名之樸)된다.
당신에게는 지금 어떤 이름이 붙어있으며, 당신은 타인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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