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와 부하직원은 같은 표현에 대해서도 상이한 의미체계를 갖기 때문에 부하직원은 상사 앞에서 제대로 '언어'를 구사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말을 해도 야단만 치는 무서운 리더 앞이라면 더더욱 말문이 막히고, 말을 하면 할 수록 더 꼬인다. 심지어 자신을 신뢰하는 '상사'와 대화할 때도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정확하게 파악하는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한비자는 '난언편'에서 말하기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다.
"말이 유창하면 화려할 뿐 알맹이가 없다고 합니다"
"말이 신중하면 조리가 없다고 합니다"
"사례를 들고 비교해 말하면 헤깔리기만 할 뿐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직설적으로 요점을 말하면 말을 잘 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어떻게 말해도 상대의 반응은 나쁘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라깡은 아예 새로운 언어의 창조를 요구한다. 라깡에 따르면 상담자는 내담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내담자의 고통을 과거의 언어에 담아서 규정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내담자를 위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야 한다. 나의 고통은 온전히 나만의 것인데, 어떻게 타인의 사례에 의해 과거에 만들어진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미 존재하는 언어의 무력함을 지적하는 라깡에 대해서 동의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다.
노자는 '도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밍밍하여 맛이 없어진다(道之出口 淡乎其無味)'고 어찌할 바를 알 수 없는 이러한 한계상황에 대해 공감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執大象 往而不害 安平大
집대상 왕이불해 안평대
노자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면 크게 평안하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말이 무력한 상황에서 어떤 공동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을까? 말을 할 수 없는 대상끼리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그 첫번째 단계는 상대의 '선의'를 믿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말 못하는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함께 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서로 안좋은 감정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선의'를 인정한다는건 '상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걸 믿어준다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또는 갈등이 생길 때마다 상대를 비난하기 보다는 상대를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된다. 즉,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이러한 안좋은 결과가 나왔을까?'를 먼저 고민하게 되고, 그 다음으로는 '내가 어떻게 도우면 또는 내가 어떻게 코칭을 하면 개선이 될까?'를 찾아보는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말의 무력함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와 갈등'은 서로 멀어지는 원인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진리(道)도 입으로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 밍밍해져서 맛이 없어지는데 우리가 하는 말은 오죽하겠는가?
마음을 꺼내어 '말'에 담는 것은 어차피 어려운 일이니 서로 비난하기 보다는 선의를 인정하고 서로 돕고 채워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기업에서 구성원의 역량을 '언변'에 의해 평가한다면 기업은 밭을 일구는 소는 사라지고 나무 그늘아래에서 노래하는 이쁜 꾀꼬리로만 가득차게 될 것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일수록 구성원 중에 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다.
땀 흘려 일하는 소의 언변을 타박하지 말자. 소를 타박하는 당신 역시도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위가 당신이 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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