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사람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모든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즉자(卽自 Ansich)와 대자(對自 fürshich)로 그 유형을 분리한다.
즉자는 사물이 만들어진 목적에 의해 존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가위는 종이를 자르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그 목적에 의거하여 존재한다.
이와 반대로 대자는 사태와 의식에 따라 다르게 존재하는 존재 방식이다.
사람은 즉자인가? 대자인가?
사람이 만약 대자라면, 사람은 상황에 따라 존재하는 모습 또는 처지가 달라진다. 멀쩡한 사람이 강도의 누명을 쓰게 된다면, 그는 '강도 피의자'로 존재한다. 그가 원래 어떤 목적으로 태어났는지 사람들은 사실 관심없다. 실제로 그 목적이 뭔지 자신도 어느 누구도 알 방법이 없기도 하다.
대자적인 존재는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취약하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개입되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타인이 만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사르트르의 희곡에 나오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은 이러한 아찔한 상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한자 사(死)는 죽은 시체에 대해 애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따서 만든 글자로서 '죽음' 그 자체보다는 '죽음'이라는 현상 또는 죽음이라는 평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한자 망(亡)은 뼈만 남은 시체로서 이미 생명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한다.
노자는 사(死)하더라도 망(亡)하지 않으면 오래 살수 있다(死而不亡者壽)고 가르친다.
인간이 어차피 대자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다면,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설명 더 나아가 나에 대한 평가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어리석다.
타인은 나를 알지 못한다. 내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무엇을 위해서 안간힘 쓰고 있는지 타인이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나의 실존에 대해 정의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지옥'에서의 삶을 선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타인이 뭐라고 말하며 나의 상태를 정의하던(死) 간에 내가 살아있으면(不亡) 나의 생명은 찬란하게 지속되는 것이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지인자지 자지자명
노자는 '타인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고 설명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람들은 '지혜'에 지쳐가고 있다.
지금 힘들어 쓰러져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멋지고 현란한 지혜보다는 답답하기만한 내 앞길을 비춰주는 등불일지도 모른다. 노자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그래야 밝아진다고 조언한다.
이제 잠시 세상의 현란한 빛으로부터 눈을 감고 소음으로부터 귀를 막고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라.
당신은 지금 여기 밝은 곳에 이렇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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