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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즐거움

배중률 - 하이젠베르크 '철학과 물리학의 만남'

by pied_piper33 2024. 10. 18.
"고전 논리학의 가장 중요한 전제로서 배중율이 있다. 어떤 명제와 그것의 부정 중의 하나는 분명히 참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 책상이 있다'는 명제와 '여기 책상이 없다'는 명제 둘 중 하나는 참이어야 한다)
"하지만, 배중율이 자연현상에 있어서 완전하고 항구불변적인 법칙일 수는 없다" - p.160
"이 딜레마를 바이제커는 보개념을 도입하여 해결을 시도한다. 바이제커의 정의방식에 따른다면, 보개념을 이루는 두 명제는 각각의 확률값 정도 만큼의 진리 정도를 갖게 된다."
"서로 보개념을 이루는 두 명제의 확률값의 합은 반드시 1이된다."
"이것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결정되지 않은 이라는 표현은 알려지지 않은 표현이 갖는 의미 이외에 부가적인 의미가 더 있다. 즉, 책상이 있는지 없는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모든 상태는 어느 정도 공존적 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상태'라는 용어를 실재로서가 아니라 '가능태'로서 설명한다면, '공존적 가능태'의 개념은 매우 타당한 설정 이유를 갖는다"
"왜냐하면 하나의 가능태는 다른 가능태를 내포하거나 다른 가능태와 중첩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164
배중율의 부정한다는 것이 자연과학을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무척 힘겨웠겠지만, 이것을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적용한다면 이해가 조금은 수월해진다. 
즉,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도 절대적으로 악한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옳은 결론인 줄 알았는데 부족한 부분이 예외 또는 반증으로 발견되기도 하고 실패 속에서 희망의 요소를 발견하는 것도 빈번하다.
옳음과 틀림이 참과 거짓이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 모습으로 중첩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반증으로서의 True와 반증으로서의 False를 사회과학적 대상 전체에 대한 절대적 참과 거짓을 규정하는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 명확하다.
'신중함'과 '인내'라는 단어가 힘겨운 삶의 터널을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돕는 지혜인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