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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기업경영

노자와 기업경영 29장 - 거심거사거태 去甚去奢去泰

by pied_piper33 2024. 10. 11.
去甚 去奢 去泰
거심 거사 거태
노자는 '행함'과 행함을 통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추구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근시안적인 술수(유위 有爲)의 한계를 지적하고,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노력(무위 無爲)이 보다 효과적인 전략임을 강조할 따름이다.
자연의 힘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을 노자는 '무위'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생각해보야할 것은 자연에 대한 겸손함이 운명에 대한 순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자는 성스러움을 거부하고 민중의 이익을 추구해야함을 노골적으로 주장한다(19장 絶聖棄智 民利百倍).
운명에 순응하는 것도 운명을 거부하여 도전하며 바꾸는 것도 모두 자연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절하고 새롭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혁명가에게도 그 혁명의 방법론으로 '무위'는 여전히 유효하다.
변화무쌍하여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또는 자연) 속에 서있는 혁명가에게 노자는 세가지 행동강령을 제시한다(去甚 去奢 去泰).
첫번째, 타자를 내 마음대로 요리하려고 하지 말라(거심 去甚)
노자를 다룬 대부분의 책에서 한자 심(甚)에 대해서 '지나치다'라고 해석하고, 거심(去甚)을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고 중용을 지켜라'고 풀이한다.
노자가 도덕경을 쓰던 춘추전국시대의 글자인 전서에서 심(甚)은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형상으로 표현된다. 음식을 만드는 목적으로 그릇 속에 재료를 넣고 불에 올려 끓이는 것이다.
후세에 사용하는 글자 뜻으로 노자 시대의 문장을 해석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당시 글자 뜻 그대로 불에 올려진 그릇에 '대상'을 넣고 끓이려고 하지 말라는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대상을 철저하게 타자화해서 그릇에 가두고 불로 요리하려고 하는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처절한 '적'이라고 할지라도 타자화하기 보다는 '역지사지'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야 적의 약점이 보이고 내가 이길 수 있는 길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두번째, 적으로 하여금 나를 공격할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去奢)
사(奢)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뽐내고 으스대는 모양을 나타낸다.
돈 많은 사람이라고 자랑하면 도둑이 찾아올 것이고, 힘을 과시하면 그 힘을 두려워하는 세력들이 모여서 나를 위태롭게 할 따름이다. 적으로 하여금 나를 경계하지 않도록 만든 상태에서 내가 공격해야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승리를 원한다면,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적을 만들 필요없다.
세번째, 선행이 알려져 존경받는 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去泰)
태(泰)는 사람이 손을 벌려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로 도움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편안하다'라는 의미가 되고, 구한 사람 입장에서는 '존경받을만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太와 泰는 모두 같은 '태'로 발음되며 '크다'는 뜻을 갖는데, 太는 주로 물리적인 대상을 설명하는데 쓰이고, 泰는 정신적인 영역에 더 많이 쓰인다. 물론 물리적 대상이라도 태산(泰山)처럼 뭔가 숭고하고 존경할만한 것의 이름에도 쓰인다.
선행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선행은 선행에서 멈추어야 한다.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도 '선행하는 삶'은 물론 중요하지만, '선행'으로 알려지고 존경받는 것을 추구하면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생성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행이 쌓여지고 그 소식이 자연스럽게 흘러나가 알려지면 그것으로 족하다.
결론적으로 노자는 인격적인 미성숙이 초래한 어리석은 행동이 자유도(degree of freedom)를 떨어뜨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운명에 도전하고 싶은 혁신가에게는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면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노자의 세가지 강령 거심, 거사, 거태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