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도덕'이라는 자발적인 자기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또다른 질문과 연결된다.
만약, 도덕이라는 것이 '자유로운 인간'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면 도덕의 시작점을 굳이 '신'등의 초월적 존재로부터 찾을 필요는 없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행위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왜 이러한 도덕적 행위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목적이 필요해서는 안된다. 칸트는 법정 증언을 예시로 드는데, 법정 증언을 진실하게 해야하는지, 거짓말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목적'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데, '목적'이 개입되는 순간 문제가 발생된다고 지적한다.
칸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의 고백이 그에게 법적으로 요구되었을 즈음에 아직도 어떤 목적을 찾아볼 필요를 느끼는 자는 그 점에서 이미 비열한 자인 것이다."
도덕에 목적을 고려하는 것은, 개인의 의사결정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비열한 행위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러면 우리는 왜 도덕적인 행위를 해야하는 걸까.. 우리가 착해서? 선해서?
칸트는 도덕적 행위로 발생되는 결과에 주목한다.
"그러므로 도덕으로부터 하나의 목적이 생겨 나온다. 왜냐하면 도대체 이러한 우리의 올바른 행위로부터 무엇이 생겨나는가 (중략)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성은 도저히 무관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도덕적 행위를 하기 전에 '목적'을 고려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나의 도덕적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대해서 인간이 궁금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문제는 어떤 이론을 어떻게 연결해서 갖다 붙여도 도덕적 행위가 반드시 '선의 승리'를 보장한다는 논리 구조를 만드는게 불가능하고, 역사를 통해 반복적인 악인의 승리를 인류가 목도해왔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어렵다는 사실이다.
칸트는 이 지점에서 선을 추구해야하는 이성의 '명령(의무)'와 그 추구 행위에 대한 '보상'을 연결시켜주는 존재로서의 '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때 릭 워렌이라는 미국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겠다는 많은 사람들은 목적 자체에 대한 '사유'를 스스로 하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리더의 판단에 '목적'의 설정과 '목적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을 맡겼던 듯 보인다.
칸트는 도덕의 존재 이유 또는 도덕적 행위의 시작점으로서 목적을 부여하는 '신' 또는 '신의 대리인'보다는, 우리의 도덕적 행위로 추구해야하는 '선'이 현실적으로 개인의 부의 증가와 개인의 명예와 권력의 증대, 긍극적으로 개인의 욕망의 충족으로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 딜레마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행위'를 스스로의 판단으로 인간이 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후적인 개념으로서 '신의 존재'를 요청하고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지금 어디에 서 계셔야할 것인가?
도덕적 행동의 시작점...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근거...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어리석음의 이름...
오늘은 오랫만에 명동성당 언덕을 올라가 보려고 한다.
만약, 도덕이라는 것이 '자유로운 인간'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면 도덕의 시작점을 굳이 '신'등의 초월적 존재로부터 찾을 필요는 없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행위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왜 이러한 도덕적 행위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목적이 필요해서는 안된다. 칸트는 법정 증언을 예시로 드는데, 법정 증언을 진실하게 해야하는지, 거짓말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목적'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데, '목적'이 개입되는 순간 문제가 발생된다고 지적한다.
칸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의 고백이 그에게 법적으로 요구되었을 즈음에 아직도 어떤 목적을 찾아볼 필요를 느끼는 자는 그 점에서 이미 비열한 자인 것이다."
도덕에 목적을 고려하는 것은, 개인의 의사결정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비열한 행위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러면 우리는 왜 도덕적인 행위를 해야하는 걸까.. 우리가 착해서? 선해서?
칸트는 도덕적 행위로 발생되는 결과에 주목한다.
"그러므로 도덕으로부터 하나의 목적이 생겨 나온다. 왜냐하면 도대체 이러한 우리의 올바른 행위로부터 무엇이 생겨나는가 (중략)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성은 도저히 무관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도덕적 행위를 하기 전에 '목적'을 고려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나의 도덕적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대해서 인간이 궁금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문제는 어떤 이론을 어떻게 연결해서 갖다 붙여도 도덕적 행위가 반드시 '선의 승리'를 보장한다는 논리 구조를 만드는게 불가능하고, 역사를 통해 반복적인 악인의 승리를 인류가 목도해왔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어렵다는 사실이다.
칸트는 이 지점에서 선을 추구해야하는 이성의 '명령(의무)'와 그 추구 행위에 대한 '보상'을 연결시켜주는 존재로서의 '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때 릭 워렌이라는 미국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겠다는 많은 사람들은 목적 자체에 대한 '사유'를 스스로 하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리더의 판단에 '목적'의 설정과 '목적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을 맡겼던 듯 보인다.
칸트는 도덕의 존재 이유 또는 도덕적 행위의 시작점으로서 목적을 부여하는 '신' 또는 '신의 대리인'보다는, 우리의 도덕적 행위로 추구해야하는 '선'이 현실적으로 개인의 부의 증가와 개인의 명예와 권력의 증대, 긍극적으로 개인의 욕망의 충족으로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 딜레마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행위'를 스스로의 판단으로 인간이 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후적인 개념으로서 '신의 존재'를 요청하고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지금 어디에 서 계셔야할 것인가?
도덕적 행동의 시작점...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근거...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어리석음의 이름...
오늘은 오랫만에 명동성당 언덕을 올라가 보려고 한다.
'책 읽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김의 미학 -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0) | 2025.01.01 |
---|---|
김현 '책 읽기의 괴로움' (0) | 2024.12.17 |
모욕 받은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지 말라 (0) | 2024.12.08 |
커뮤니케이션 오류를 초래하는 은폐된 자아 - 애드워드 홀 '침묵의 언어' (0) | 2024.11.26 |
인생은 과정의 집합일 뿐이다 - 랜디 코미사르 '승려와 수수께끼 The Monk and the Riddle' (0) | 2024.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