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할까?
이때, 가장 쉽지만 어떠한 해결책도 만들어 주지 못하는 해법은 '모두에게 책임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해결을 위해 뛰어들지 않는다.
1991년 노벨 경제학상은 코즈 정리를 만든 로널드 코즈에게 돌아갔다.
코즈 정리는 대략 이런 내용이다.
꿀벌 농장과 연탄 공장이 서로 이웃하여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꿀벌 농장은 맑은 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연탄 공장에게 공장 연기를 줄여달라고 요구한다. 반면에 연탄 공장은 원하는 만큼 연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매연을 많이 배출할 수 밖에 없다.
시장기능에 맡겨 두어봤자.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협상을 하든지 벌꿀과 연탄 둘 중 하나는 시장에서 필요로하는 공급을 이루어내지 못하므로 사회 전체적으로는 최적화에 실패한다. 소위 '시장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코즈의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꿀벌 농장에게 '맑은 공기'에 대한 권리를 배타적으로 부여하고, 연탄공장이 공해 발생에 대해 꿀벌 농장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던가 반대로,
연탄공장에게 '매연'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고 꿀벌 농장에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어도,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 전체적인 공급의 최적화는 만들어진다. (물론 수학적인 최적화이다.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올바름은 논외로 하자)
커뮤이케이션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의 잘못인지 한쪽의 손을 들어주면 '모두'의 잘못으로 희석시키는 것보다는 좋은 결과가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윗사람이 설명했는데 아랫사람이 못알아 들으면 아랫사람 잘못이고, 아랫사람이 설명했는데 윗사람이 못알아 들으면 이때도 아랫사람의 잘못인 방식으로 문제의 해결이 시도된다.
이는 꿀벌 농장과 연탄 공장 둘 중 하나에게 권리를 배타적으로 부여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마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권리의 주체가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다면 경제 주체들은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기 어려워진다. 역시 비효율적이다.
무조건 아랫사람 잘못으로 결정되는 경우에는 윗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리더로서의 경쟁력이 갈 수록 나빠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무능한 리더에 의해 지휘되는 기업이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듣는 사람의 책임으로 하거나, 말한 사람의 책임으로 하는 둘 중 하나로 명확하게 정하는게 합리적이다.
다만, 듣는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인류가 충분히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설명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수많은 성과가 이미 축적되어 있으므로,
말한 사람의 책임 쪽으로 결정하는게 노력을 통한 개선의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이득이 많다.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발생되고 있다면, 직위 직급 갑을에 관계없이 무조건 말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그라운드 룰을 정해보자.
억울한 피해자가 일부 발생할 수 있을 지 몰라도, 기업 전체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 효율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역량 자체도 개선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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