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끄 랑시에르는 '진정한 소통'은 몫 없는 자들이 계급 질서를 거부하면서 자신의 몫을 주장할 때 비로소 발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예주와 노예 사이의 제대로 된 대화는 그들 사이의 계급적 차별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계급적 차별이 유지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말'의 교환은 지시와 복종일 따름이고 이것은 소통이 아니다.
주역의 11번째 괘 태(泰)는 소통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태괘는 땅이 하늘 위에 있는 형상이다. 하늘이 위에 땅이 아래에 있는 상태를 뒤집은 것이다.
불합리/불평등을 소위 기본값(given condition)으로 인정하면, 할 수 있는 말의 폭과 깊이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가사노동은 왜 여자만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원래 그런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어떻게 양성평등에 대해서 대화할 수 있을까?
또,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보면서 '힘이 없으면 당하는거야'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과 평화를 함께 고민하기는 어렵다.
하늘은 원래 위에 있고 땅은 원래 아래에 있는 거야..라는 사고를 전복시킨 연후에야 '소통'이 시작될 수 있다는 주역의 아이디어는 그래서 신선할 뿐만 아니라 신성하기 까지 하다.
태괘 속 소통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주역은 뿌리가 서로 엉켜있는 잡초를 이야기 한다. 소통은 우리가 한데 얽혀있다는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당신이 존재하니 내가 존재합니다'라는 우분투(ubuntu) 사상과도 맥이 닿아있다.
이해관계에 매몰된 시각으로 사람을 차별하기 보다는 마음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이고, 계속 더 낮은 자세로 겸손해져야 한다. 주역은 황제가 자신의 누이를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시집 보내는 비유로 이를 설명한다. 누이에게 너는 황제의 동생이니 시집가서도 낮은 신분의 사람들에게 군림하라고 가르칠 가능성이 없다. 가족과 잘 어울리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태괘는 결론에서 소통의 실패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성이 무너지고 해자가 메꾸어진다"
이제 적이 침입해와도 방어할 수 없게 된다. 즉, 소통의 부재는 외부의 적에 의해 당하는 피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기업 또는 조직에서의 소통이 강화되기를 원한다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하늘과 땅의 위치 변경이다.힘 있는 사람들이 계속 하늘에 머물러 있기 원한다면 소통은 요원하다. 곧 외적으로부터 침입을 받게 될 것이다.
'주역과 CE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역과 CEO 13 - 천화동인 天火同人 (0) | 2024.04.04 |
---|---|
주역과 CEO 12 - 천지비 天地否 (0) | 2024.04.04 |
주역과 CEO 10 - 천택리 天澤履 (0) | 2024.04.04 |
주역과 CEO 9, 26 - 풍천소축 風天小畜, 산천대축 山天大畜 (0) | 2024.04.04 |
주역과 CEO 8 - 수지비 水地比 (0) | 2024.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