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폭력 행위와 금품 갈취가 심하게 발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 교사가 불량 학생을 불러서 징계조치를 내리게 될 경우,
불량 학생이 반성을 하고 잘못된 행동을 멈출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앙심을 품고 피해학생을 더 많이 괴롭힐 가능성도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24시간 중에 교사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은 학교에 머무는 동안의 몇시간에 불과하고 피해학생은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동안 불량학생의 폭력에 노출되게 된다.
따라서, 교사의 징계행위는 오히려 피해학생으로 하여금 더 많은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사의 징계 행위는 부적절했는가? 교사는 불법 행위가 발생되더라도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인가?
책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 저자인 앨버트 허시먼은 보수 진영이 오랜 역사를 통해 효과적으로 활용해온 '역효과 명제' 즉,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만들어낼 뿐이다'로 이 상황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빈민 구제, 여성 참정권, 아동 노동 금지, 실업 급여 지급 등 지금은 진영과는 관계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소위 '진보'적인 정책들은 모두 이 '역효과 명제'라는 강한 반대에 부닥쳤고, 지난한 투쟁을 통해 극복해야 했다.
미래에 발생될 수 있는 변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상할 수 없는 변수와 그 영향에 대해서는 그것의 부정적 효과와 긍정적 효과의 합의 평균값을 '0'으로 놓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부정적 효과만을 가정하고 '역효과 명제'를 제시하면서 반대하는 것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결집하는데 언제나 강력한 능력을 보여왔으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해온 것이 사실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어 온 '역효과 명제'는 그 영향력에 비해 이론이 되기에는 통계학적인 근거가 없거나 매우 약하다.
아동 노동은 근절되어야 했으며
노예는 해방되어야 했고
소득/학력/신분과 관련없이 모든 사람은 동등한 한표의 권리를 부여받아야 했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므로 미래에 대해 완벽히 예측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더라도
이를 위한 정책은 만들어져야 하고 지속적으로 시도되어야 한다.
흐르는 강물에 떠있는 배는 노를 저어야 상류로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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