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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CEO

주역과 CEO 7 - 지수사 地水師

by pied_piper33 2024. 4. 4.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다툼과 갈등도 이겨냈으니 이제 군사를 일으켜 출정을 할 차례다. 
 
주역의 7번째 괘인 사(師)는 큰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의 무리를 어떻게 운영해야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사 괘는 땅 아래에 물이 들어있는 형상이다. 즉, 땅 속에 묻혀 있어서 보이지 않는 물은 곡식을 자라게 하는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존재 자체를 모른채 땅이 황폐화 될 수도 있다.
사람의 집합체인 '무리'의 힘은 땅 아래의 물과 같다. 
 
귀스타브 르봉은 책 '군중심리'를 통해,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놓더라도 일단 군중이 되는 순간 판단력과 이성을 상실하고 짐승처럼 욕망에 휘둘리고 급기야 부도덕한 행동까지도 서슴지 않으며 또, 잘 조직되고 동기부여된 군중은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해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즉, 사람의 집합체는 극단적으로 유능할 수도 있고, 처참하게 무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무리 즉 조직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까..
 
주역은 우선 룰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고 가르친다(師出以律).
뛰어난 야구선수가 뛰어난 감독이 되지 못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 
 
뛰어난 리더가 하나에서 열까지 말로 지시하는 건 한계가 있다. 말이 전달되는 범위가 리더 근처로 제한되어 조직의 대부분이 관리 부재 상태로 방치될 위험이 있으며, 조직 구성원의 '두뇌'가 능동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진다. 
 
독일군의 작전적 사고는 전장에서 지휘관의 독단적 의사결정을 중시한다. 이는 전쟁의 목적과 전략/전술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현장 지휘관들이 공유했을 때 가능하다. 즉, 룰이 정해졌을 때.. 소위 '독단'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
 
문제는 '룰'를 계획하고 만들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공해서 현장 지휘관에게 전달하는게 최고 사령관의 입장에서는 매우 피곤한 일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스탈린의 발언은 언제나 모호하고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알아서 해석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시를 알아서 해석해서 전투를 수행할 경우, 스탈린으로부터 내가 언제 그렇게 지시했느냐는 식의 질책을 받고 숙청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두번째로 주역이 조직 운영의 노하우로 요구하는 건 리더가 군대 속에 머물러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군대 밖에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보고를 받으면서 군대를 지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가공된 정보만을 받을 수 밖에 없고 현장의 생생함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최고 사령관의 역할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정보가 부실하면, 의사결정의 양과 질이 나빠진다. 물리적으로 군대 안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더 디테일한 정보를 얻음으로 더 좋은 퀄리티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군대 안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주역이 강조하는 세번째 조직관리의 핵심요소는 지휘권의 통일이다. 
사괘에는 尸라는 문제적 존재가 등장한다. 시체 또는 제사 지낼 때 신위 대신 앉히는 어린아이(尸童)의 의미를 갖는다. 
 
아직 출정 준비 상황인 걸 감안한다면 여기서는 시체(屍)가 아니라, 시동(尸童)의 뜻으로 쓰여졌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주례(周禮)에서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조상신 대신에 제사상에 시동을 앉히는 것처럼, 현장 사령관보다 힘센 존재(예를 들어 현장 사령관을 감시하도록 보낸 왕세자)를 전쟁터에 동반하면 필연적으로 지휘권이 분리되게 된다. 
 
누군가는 현장 사령관에 줄을 서고, 또 누군가는 왕세자에게 줄을 선다. 지시 불이행의 매우 효과적인 효과적인 핑계거리가 된다. 
 
시동을 동반한 조직은 필연적으로 실행력이 약화된다.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 
 
그래서, 주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애물단지를 동반하면 망한다고 경고한다(師或輿尸 凶).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제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달려들어야 할까?
 
화랑도의 세속오계에 나오는 임전무퇴는 대부분의 병법서에서 부정된다. 전쟁이라는 건 일합을 겨루고 깔끔하게 승패가 결정되는 스모 경기가 아니다. 
 
수많은 업 앤 다운이 발생하는 긴 승부이므로, 안되겠다 싶으면 전투력을 보존하고 재정비하기 위해 퇴각해야 한다. 
 
작전상 후퇴를 결정한 지휘관에 대해서는 꾸짖기 보다는 오히려 성공적인 퇴각으로 군사의 희생을 막았으니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 
 
이어지는 다섯번째 음효에서는 재정비의 방법을 설명한다.
 
재정비의 원칙을 종합하면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타이슨이 말한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이 있다. 얼굴에 한대 얻어맞기 전까지는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face)'과 
 
몰트케의 '적과의 첫 접촉 이후에도 살아남는 계획은 없다 (Kein Plan überlebt die erste Feindberührung)'는 
 
전투가 벌어진 이후에 발생되는 무질서를 실감나게 전달한다.
 
구성원들의 역할과 목표는 작전의 진행과정에서 계속 흐트러진다. 그럴때마다  최초의 계획으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전투를 통해 알게된 적에 대한 정보와 우리 조직에 대한 정보를 반영해서 다시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주역은 이를 밭에 야생짐승이 놓여있다고 묘사한다(田有禽 利執言). 야생짐승은 죄가 없다. 사냥터에서 야생짐승이 발견되었다면 사냥꾼은 환호했겠지만, 멧돼지가 논밭에서 뛰어 다닌다면 농부는 비명를 지를 수 밖에 없다. 
 
급박한 전투의 현장에서 야생짐승에게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고, 다른 곳에서 뛰어 다니라고 설득하는 건 매우 난이도 높은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하고 그래야만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우여곡절을 지나며 전쟁이 끝났다. 이제 지속가능한 승리를 위해 다시 체계를 세울 차례다. 
 
나라를 열고 가문을 세우라고 가르친다. 전쟁을 통해 역량을 입증한 인재들에게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그곳에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승리에 도취되어 즐기는 동안 최고 사령관은 부하들에게 새로운 미션을 전달할 준비를 해야한다. 최고 사령관의 역할은 의사결정을 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고 최고 사령관에 대한 평가는 그 의사결정과 명령의 퀄리티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주역 사괘는 마지막 효에서 한번 더 강조한다(大君 有命). 
 
이때,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소인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이슈가 남아있다. 
 
부도덕하고 편협한 사람(소인)이라도 전쟁통에는 충분히 공적을 세울 수 있고 당연히 소인이 세운 공적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치하하는게 옳다.
 
주역은 적절한 보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보상으로만 끝내고, 중용하지는 말라고 가르친다(小人勿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