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가 2012년에 쓴 책 '불평등의 대가'의 원어 제목은 'The Price of Inequality'이다.
경제적인 불평등에 대해서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요소 또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간주하는 학자들과 정치가들에게 반론을 제기한다. 즉, 불평등은 공짜가 아니고, 불평등은 그 자체로 심각한 댓가를 초래하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이라는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특히 탁월했던 것은 문제가 되는 불평등은 과연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하면서 논리를 풀어나갔다는 점이다.
스티글리츠는 상위 1%에게 자본소득이 집중되는 '부'의 불균형한 분포를 사회를 망가뜨리는 불평등으로 정의했다.
예를 들어, 소득 상위 20%와 하위 50% 사이의 불균형에 집중하여 불평등을 분석하는 순간,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도 방해하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책 '애프터 피케티(After Piketty)에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2013)'의 가치에 대해서, 중산층을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빈곤계층을 확대시키는 원인으로서 상위 1% 보다 정확히는 0.1%에게 부가 지속적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피케티는 소득 상위 10%를 분석하면서, 이중 9%의 소득은 주로 노동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이며 사회 전체의 불평등 구조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악화시키는 요소는 아니라고 봤으며, 경제 성장의 열매를 자본소득에 의존하는 1%가 차지하고 나머지 99%의 삶은 오히려 후퇴하는 현상을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보여준다.
(크루그먼은 노동소득이라고 하더라도, 미국과 같이 경영자가 과도하게 천문학적인 임금을 챙기는 것을 통해 상위 1% 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본소득과 같은 맥락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노동소득에게 일괄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것에는 반대한다)
스티글리츠와 피케티의 아이디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자면 그리 어렵지 않다.
연봉 2~3억을 받은 임원과 연봉 5천만원을 받는 직원 사이의 소득 불균형 문제보다 10억을 주고 구입한 아파트가 25억이 되고, 5억을 주고 구입한 아파트가 9억이 되어 19억의 매매 차익을 얻고 이렇게 얻은 차익을 다시 자산 구입에 투입하여 자산 가격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면서 자산소득을 향유하는 계층과,
안입고 안먹고 저축을 해도 전세보증금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서, 외곽으로 밀려나는 임금소득 계층 사이에서 발생되는 소득 불균형의 문제가 경제 성장과 후생 증대 관점에서 훨씬 더 본질적인 이슈라는 것이다.
'불평등'이라는 이름을 붙인 분석과 이에 따른 정책 대안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불평등으로 정의할 것인가 또는 불평등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앞칸과 뒷칸 사람들의 피 비린내나는 투쟁이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허무해졌던 이유는 객차를 기준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매몰되어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성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었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위 20%의 소득과 하위 50%의 격차 보다는.. 상위 1%와 나머지 99%의 격차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지구라는 설국열차를 함께 탑승한 사람들에게 스티글리츠와 피케티가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프레임이 제대로 설정되어야 한다.
불평등 이슈라고해서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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