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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멍거와 세속적 지혜

이데올로기의 위험

by pied_piper33 2024. 11. 22.

청나라의 기세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가던 명나라는 1636년 황손무를 조선에 사신으로 보낸다. 조선으로 하여금 청나라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강요하기 위함이었다. 

 

황손무는 지금까지의 중국 사신과는 많이 달랐다. 파티를 요구하지도 뇌물을 챙기지도 않고 청렴하게 군사 원조라는 자신의 미션에 집중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일이 터졌다. 청나라 군대가 북경을 포위하고 역대 황제들의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황손무는 급하게 귀국길에 오르며 인조에게 편지를 남겼다. 편지의 요지는 이랬다. 

"청나라와 화친하십시오. 조선이 어리석게 청나라와 대립하다가 공격을 받아서 망한다면 명나라 또한 중요한 우군을 잃게 되는 비극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광해군이 명과 청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한 것에 대해 패륜으로 규정하고 이를 빌미로 반정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은 인조와 조정대신들 입장에서는 명나라 사신의 '화친 요구'에 대해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이 황손무 만은 아니었다. 평안도의 섬 가도에 주둔하고 있던 명나라 장수 심세괴도 생각도 같았다.

'오랑캐와 관계를 끊고 왕래하는 사람이 없다'는 김육에게 비슷한 요구를 한다. 

"때때로 사람을 보내서 정세를 염탐하라"

 

하지만, 조정대신들은 황손무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명을 위해 청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라고 계속 주장했다. 

 

이 상황에서 최명길은 인조와 조정대신에게 '청과 관계를 회복하던가' 아니면 '청과 싸울 수 있도록 제대로 전쟁준비를 하던가' 둘 중 하나로 명확하게 스탠스를 잡으라고 요구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달성하려는 '간신'이라는 누명을 쓴다. 

 

결국, 조정에 울려 퍼진 것은 '광해군이 후금과 화친했기 때문에 쫓아냈다'라는 반정의 이데올로기 밖에 없었으며, 명나라 사신 황손무의 화친 조언에도 불구하고 '명을 배신하고 백성을 기만하지 않기 위해서 화친하면 안된다'는 성토만 반복되었다. 

 

찰리 멍거는 과도한 이데올로기를 경계한다. 멍거에 따르면 이데올로기가 위험한 이유는 '설득'하지 않고 '주입'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집단의 사고능력을 떨어뜨리고 급기야 정신적 기능장애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귀스타브 르봉이 경고한 '군중화된 엘리트'의 저지능 상태와도 맥이 닿는다. 

 

이데올로기라는 병에 감염되면 '뇌'가 기능을 멈추기 마련이다. 

 

지금 당신이 몸 담고 있는 기업에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면서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가? 존재 여부를 파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설명을 요구하면 안되는 신성불가침의 무언가가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