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은 시공간의 휘어짐 즉 곡률을 나타내는 좌변과 물질을 나타내는 우변으로 구성된다.
이는 공간과 물질이 마치 무대와 배우처럼 따로 떨어져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공간과 물질이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변형시킨다는 의미가 되겠다.
따라서, 물질이 존재한다면 곡률 없는 완벽한 평면이 존재하기 어렵고 당연히 내각의 합이 180도인 삼각형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유클리드 기하학이 말하는 완벽한 삼각형은 물질이 없는 세계에나 있는 허구적 존재일 뿐이다.
선 보다는 악의 위세가 더 대단한 현실을 볼 때마다, '도덕'이라는게 그리고 인간이 짐승과 다르다고 믿는 수많은 이유들이 내각의 합이 180도일 수 있는 이상적인 곡률 제로의 세계를 전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은 단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며, 선과 악은 모두 착각의 영역에 있으니 그저 짐승처럼 약육강식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공공경제학에서는 시장실패를 다루는 두가지 방법을 이야기한다.
어느 특정 영역에서 해결 불가능한 시장실패가 발생될 경우, 시장실패가 발생된 영역은 일단 내버려 두고 나머지 영역을 최적화시키는 방법으로 경제 전체적인 후생의 극대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
시장실패가 발생된 영역을 고려하여 (이를 제약조건으로 두고), 시장 전체를 최적화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장실패가 발생되지 않은 영역만 따로 떼어내서 본다면 최적화가 아니게 된다. 이를 차선의 이론이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차선의 이론은 시장실패가 어디서 발생되었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실패가 지속 또는 강화되는지 알아내기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정보획득 비용과 행정 비용을 고려한다면 실현 가능성이 낮다.
이때, 정보가 아예 없는 정보 궁핍의 케이스와 정보가 약간은 있는 정보 부족의 두가지 케이스를 가정할 수 있다.
삼선의 이론은 이 두가지 케이스에서의 최적 해를 찾는 수학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방향으로 왜곡이 발생되었는지 정보가 아예 없는 케이스에서는 왜곡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세계를 가정하고 정책을 수립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또 약간의 정보가 있는 조금은 다행스러운 상황이라면 왜곡의 방향을 고려하여 파인튜닝하면 된다.
다시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과 유클리드 평면 그리고 도덕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뒤틀리고 휘어진 그래서 망가져 버린 듯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더라도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휘어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보 궁핍),
도덕의 가치를 믿어도 되는 이상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듯 바르게 사는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살다가 약간이라도 정보가 쌓여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파인튜닝하는 선택을 하면 된다.
물질이 있으니 곡률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이 있으니 부조리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는게 논리적이고 동시에 합리적이다.
중력이 나를 끌어당기더라도 바닥에 시체처럼 누워있기 보다는, 도약하고 춤을 추어야 한다고 말하며, 대낮에 등불을 들고 있는 니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삶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누구의 노예인가? (0) | 2025.07.01 |
---|---|
방랑하는 운명 (0) | 2025.06.29 |
번외팔목 (0) | 2025.04.29 |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나의 영웅들 (0) | 2024.12.23 |
등을 돌리는 자유 (0) | 2024.12.20 |